1963년 중국의 작은 마을 부용진이라는 마을에 오금이라는 여인이 있었다. 두부 가게를 경영하는 오금은 마음씨 착한 남편이 있었고 마을 사람들도 모두 명랑한 그녀를 좋아했다. 　이 마을에는 미곡 관리소 주인인 고연산과 땅 주인인 거리의 문제아 왕추신, 그리고 최고의 지식인이지만 극우로 낙인찍혀 바보처럼 살아가는 진서전 등이 있다. 오금은 피나는 고생 끝에 돈을 모아 가게를 신축한다. 그러나 정치 공작 반장으로 승진한 이국형이라는 사람에 의해 부르주아로 몰리게 된다. 잠시 친척 집으로 몸을 피한 뒤 돌아와 보니 남편은 이미 죽었고 자신은 새로운 부농이라는 낙인이 찍혀있었다.　문화혁명의 바람이 불어 닥쳐 이국형이 득세하자 오금과 극우로 몰론 진서전에게 이른 아침 거리의 돌담을 청소하는 일이 주어진다. 두 사람은 죄인으로 일을 하는 가운데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마침내 동거까지 하게 돼 오금은 아이를 임신하게 된다. 그러나 두 사람은 서로 3년과 10년의 징역을 선고받아 헤어지고 오금은 혼자 아이를 낳게 된다. 미곡 관리소 주인 고연산이 오금을 도와주게 되고 아이 이름도 자신의 성을 따게 해준다.　세월이 흘러 1979년 마침내 문화혁명은 종결되고 3년의 세월이 흐른 뒤 1982년이 되었다. 헤어져 있던 사람들은 다시 만나게 되고 명예회복이 된 진서전은 다시 부용진으로 돌아와 오금을 부둥켜안고 회한의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그는 벼슬을 멀리하고 부용진에서 오금과 조용히 두부가게를 하면서 살기를 원한다.　1988년 중국에서 만들어진 부용진이라는 영화다. 이 영화의 배경이 된 부용진이라는 마을은 원래 왕촌이라고 불렸다. 그러나 이 영화가 중국에서 큰 인기를 얻자 아예 마을 이름을 부용진이라고 바꿔버렸다. 중국 호남성 장가계에서 귀주성쪽으로 버스를 타고 4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의 이 마을은 명·청 시대의 가옥이 고스란히 보존돼 있다. 중국인 관광객들은 많이 찾지만 우리나라 관광객에게는 그리 많이 알려진 곳이 아니다.　그러나 부용진이 주는 교훈은 많다. 부용진에 가면 오금이 생업으로 영위했던 두부가게를 재현한 수많은 두부가게들이 몰려 있다. 관광객들은 그 가게에서 두부를 먹으며 문화혁명으로 탄압을 받았던 선량한 인민의 삶을 상상하고 수 백년 보존된 고풍스러운 전통가옥의 멋에 빠져든다. 토가족이라는 소수민족의 민속이 고스란히 보존된 부용진이라는 작은 마을은 하루 정도를 투자해서 둘러봐도 전혀 지루하지 않을 정도로 노천박물관의 역할을 하고 있다.　왕촌이라는 이름 없는 마을이 일약 유명한 관광지로 부상한 것은 바로 영화라는 매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그 계기를 절묘하게 살린 주민들의 지혜도 빛난다. 이것이 바로 스토리텔링이다. 실재하지 않은 이야기를 만들어서 생동감 있게 살린 예다. 주민들은 이 절묘한 스토리텔링으로 밥을 먹고 아이들을 교육시키기에 넉넉한 살림을 꾸렸다. 이탈리아의 베로나라는 작은 마을에 있는 줄리엣의 집도 마찬가지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여주인공의 집이라고 꾸며놓긴 했으나 아무런 근거가 없다. 셰익스피어의 희곡도 역사적 근거를 바탕으로 하지 않았으며 셰익스피어가 베로나를 방문했다는 증거도 없다.　경주에는 수많은 설화가 전한다. 경주 전역이 설화의 현장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이 설화를 상품화해본 적이 없다. 얼마나 재미난 이야기가 많은지에 대해 고민도 해보지 않은 듯하다. 심지어 비형랑 설화의 현장인 두두리벌에 월정교 관광을 위한 간이 주차장을 만드는 정도다. 그만큼 이야기 자원에 대한 이해가 몰지각하다.　페르시아의 서사시 쿠쉬나메에 나오는 황금의 도시 바실라에 대해서 상품화 하려는 노력을 전혀 찾을 수 없다. 이미 세계적인 관심사를 가지고 있는 이 서사시를 그냥 밀쳐두고 있는 것은 직무유기다. 실크로드의 동쪽 출발지가 신라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는 이슬람 문화권의 고지도가 발견됐다고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학자가 얘기했음에도 기증사실로 만드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앞으로는 이야기의 시대가 온다. 도처에 널려 있는 이야기 자원을 활용한다면 경주는 엄청난 자원을 확보할 수 있다. "이야기를 좋아하면 가난하게 산다"는 옛 어른들의 말은 이제 틀린 말이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