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제2차 대전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을 무렵, 일본은 극동의 패권 장악에 방해가 될 것 같은 미국의 예봉을 꺾어놓기 위해 선전포고도 없이 진주만 기습공격을 단행하였다. 그로 인한 태평양 전쟁도중 미군들의 사상자도 엄청났지만, 당시 전쟁포로 등에 대한 일본군들의 잔학상이 얼마나 컸으면, 참전했던 미군 병사들이 말하기를, `차라리 독일은 용서해도 일본은 용서할 수 없다`라고까지 했을까? 그러나 미국은 전후(戰後)에, 자국민들을 그렇게도 불행하게 했던 일본에 대해 복수 대신 엄청난 원조를 쏟아 부어, 일본을 재건하였고, 지금은 일본이, 과거 귀축(鬼畜)이라고 까지 부르며 적개심을 불태우던 적국과 가장 친한 친미국가가 되어 있음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1945년,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우리에게 찾아온 해방의 기쁨, 그러나 그 기쁨을 제대로 느껴보기도 전에, 1950년 6월 25일 새벽, 38도선 북쪽의 공산군이 역시 선전포고 없이 소련제 탱크를 앞세우고 기습 남침을 감행함으로써, 우리는 세계 전사(戰史)에 그 유래가 흔치 않을 정도의 처참한 한국전쟁을 치르게 된다. 당시를 체험한 세대들이라면, 뉘라서 그 때의 그 참상을 잊을 수 있을 것이며, 또 그런 끔찍한 불행을 우리에게 안겨다 준 그들을 증오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그 후 수 십년의 세월이 흐른 다음, 지난 국민의 정부 때, 그렇게도 굳게 닫혀있던 남북 간의 대화 창구를 연 것은 평가 될 수 있는 일이지만, 그러나 어쩌면 그것이 북쪽의 그 비이성적(非理性的) 정권을 오히려 연장 시켜주는 결과를 만든 것은 아닌지? 나는 아직도 거기에 대해서는 어떠한 확신도 가지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역사에 가정은 있을 수 없겠지만, 만일 그 때, 남북수교 대신 반대로 압박을 더 심하게 가했더라면, 그들이 소위 그 `고난의행군`을 이기지 못하고, 자멸하게 되었을지? 아니면 이판사판 극단적인 선택을 하였을지? 누구인들 그 결과를 지금에 와서 단정할 수 있을까? 그러나 내가 상식적으로 판단해 보면, 그 어느 쪽도 우리에게 바람직한 사건은 아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즉, 전쟁도 최악의 시나리오지만, 만일 그 때 내부 붕괴로 갑자기 휴전선이 무너지고 한꺼번에 대량의 굶주린 난민들이 남으로 남으로 밀려 내려오기 시작했다면, 이쪽 역시 엄청난 혼란이 있었을 건 뻔한 일이 아니었을까? 지금 이 시각에도 목숨을 걸고 지중해를 건너는 아프리카 난민들이나 중동의 시리아 난민들 때문에 유럽 각국들이 얼마나 큰 몸살을 앓고 있는가? 　그래도 그들은 이민족(異民族)이기에 인도적 차원이라는 책임 외에 다른 마음의 부담은 상대적으로 크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난민 수도 북한 주민의 수에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은 수이고, 또 유럽 여러 나라가 난민문제를 분담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반도 내에서 벌어지는 우리민족끼리의 문제는 비용을 분담해줄 주변국도 없을 뿐만 아니라 당시 우리 역시 전대미문의 IMF 환란을 맞이한 직후였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북쪽의 자체붕괴조차도 당시에 우리가 과연 감당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 생긴다.　국민정부의 기조를 계승한 참여정부까지, 국민감정과는 별개로 남쪽이 북쪽에게 적지 않은 호의를 배풀었던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래도 그때는 과거 어느 때보다 한반도가 외부적으로는 비교적 안정된 모습이었고, 중국과의 교역도 활발하였던 것이 그 대가라면 대가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그 후 보수정권으로 바뀌면서 남북관계는 다시 급속하게 냉각되기 시작하였으며, 급기야 핵전쟁 위협 등 한반도는 휴전 이래 가장 전쟁위험이 높은 긴장 상태에 돌입되고, 또 실질적인 북핵공격의 방어책도 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이는 `사드`배치 문제 때문에, 중국의 외교적 보복조치까지 겹쳐 엄청난 경제적 손실까지 입게 되는 이중고를 겪어야 하지 않았던가? 그런 의미에서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을 통해, 전혀 풀릴 것 같지 않았던 그간의 남북관계가 그나마 조금이라도 해빙의 기미를 보인 것은, 비록 그들의 연출된 위장평화 제스츄어임을 감안하더라도 전혀 무의미한 일은 아닐 것이며 따라서 그들의 방남(訪南)을 시끄러운 정쟁(政爭)으로 몰고 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