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산악회 회장 K의 개업을 축하하러 가는 길이었다. 고급 식당을 차린 K를 부러워하고 수다를 떨며 대전에 도착했을 때 겨울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그런데 K가! 그 새 노인처럼 폭삭 늙어버렸다. 서너 달을 버틸까 싶지 않다고 한다. K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지는 것을 보고 그들은 바삐 일어섰다. 돌아가는 차 안에 한숨이 가득했다. 　그는 차창에 흘러내리는 빗물을 보며 회상에 잠겼다. 사업에 실패한 그가 돈을 꾸러 갔다가 빈손으로 돌아가며 처마 밑에 쭈그려 앉아 비를 피했는데, 물방울이 손등에 똑, 떨어졌다. 눈에서도 뚝, 떨어졌다. 빗방울 한번, 눈물방울 한번, 번갈아 떨어지는 손등을 노려보며 그래도 살아야 한다는 장한 생각을 했었다. 그러니까, K도! 갑자기 지른 소리에 놀란 후배가 아이고 놀래라, 하다 뿡! 터뜨렸다. 소리가 나면 냄새가 안 나는 법인데 온갖 영양분이 발효하는 냄새가 퍼져 나왔다. 처녀인 S 앞이라 면박을 주지 못하고 엉거주춤 사태를 덮는 중에 한 여사가 입을 열었다. 어제 버스를 탔는데 내 앞에 선 젊은 남자에게서 어찌나 냄새가 나는지 죽을 뻔했어. 어떤 냄새요? 그가 물었다. 그게, 거기서… 아, 거시기? 오빠! S가 그의 등을 후려쳤다. 크크, 그게 사람 냄새 아니냐. 마음도 울적한데 내 옛날 이바구 하나 할겨. 오랜만에 그의 인생사가 흘러나왔다. 　나는 안 해 본 일이 없어요. 이발사, 철물점, 보일러 수리에 미장도 하고, 우물도 파고, 소도 잡고, 개도 잡고… 뒤에 앉은 한 여사가 말을 끊었다. 아우는 墨子(묵자)같네. 묵자가 누군데요, 하고 그가 물었다. 묵자는 공자가 죽은 해와 맹자가 태어난 해의 중간쯤 되는 해에 태어났어. 묵자는 공인(工人)과 노동자 집안의 출신이라 그런지, 손수 성을 방어하는 기구를 만들고, 하늘을 나는 나무 솔개도 만들고, 큰 수레바퀴에 끼우는 빗장나무도 만들었대. 묵자네 연통은 검어질 수가 없다고 할 만큼 부지런하고 검약했다네. 그러니 공자의 유가 사상을, 번거로운 예의와 재물 낭비로 백성을 가난하게 만든다 하여 반대할 수밖에. 흠, 당연히 공자를 계승한 맹자도 묵자를 배척했지만 말일세. 왠지 아우를 묵자라 부르고 싶네. 말 끊어서 미안한데 아까 얘기 계속하지. 　그가 기다렸다는 듯이 다시 운을 뗐다. 그러니까 내가 하다 하다 어느 아파트 관리인에게 아양을 떨어 마당에 뻥튀기 기계를 놨지요. 한 번에 오천 원을 받고, 조무래기들에게 뻥튀기 기계 한 번 돌리게 하는데 오백 원씩 받았지요. 꿩 먹고 알 먹고, 아파트에 대포 소리가 뻥뻥 나고, 사람들이 빙 둘러서 구경을 하니 나는 포병 대위라도 된 양 으쓱했지요. 자루 안의 돈을 세고 세도 다 못 세서… 구라 좀 치지 마소, 그래 봤자 푼돈 아니오. 후배 네 말이 맞다. 그래서 내가 지금 하는 사업을 시작한 게야. 그런데, 자격증이 없어서 얼마나 고생을 했던지, 떴다는 정보가 들어오면 간판을 내렸다 올렸다, 말도 마라. 결국, 자격증 연수를 받을 결심을 했지. 책가방을 메고 강남 터미널에 턱 도착하니 택시기사들이 어디요! 어디요! 하고 호객하는데 손을 번쩍 들고 그들처럼 외쳤어. 자테! 자테! 기사들이 거기가 어디냐고 속닥거리더군. 가까이라는 경상도 말이라고 하니 시큰둥하니 나를 데려다주데. 그런데 한창 컴퓨터 앞에서 공부하다 보니 발이 살살 간지럽더라고. 양말을 벗고 자판을 두드렸는데 어디선가 퀴퀴한 냄새가 나는 거라, 고개를 드니 통로 앞줄에 앉은 남자가 맨발로 구두를 구겨 신고 있대. 그에게 신발 좀 신으라고 했지. 연수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었어. 고속버스에서 그놈의 발이 또 근질근질, 뻑뻑 긁다가 양말을 벗고 잠을 청하는데 여자 목소리가 들렸어.　 기사님! 이 차 도저히 못 타겠으니 차비 내주고 여기서 내려주세요! 기사가 내 앞에 와서 손님, 혹시? 나는 고개를 흔들었어. 구두 좀 신으면 좋겠습니다. 아, 예. 양말에 발을 꾀어 넣는데 아으, 자테서, 내 자테서 나는 거라. 한 여사가 까르르 자지러졌다. 아하하하. 배꼽 빠지게 웃느라 차가 비틀비틀, 빵빵! 트럭이 부딪칠 듯 지나갔다. 내가 그런 인간이라니까.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말이야. 맞다, 자신을 반성하는 아우가 군자일세. 묵자가 수신(修身)편에 뭐라 말했는지 알아? 군자는 힘써 일하며, 날로 분발하고, 항상 욕망을 억제하며, 몸차림은 정제히 한다. 한 여사가 말을 마치자 후배가 마무리했다. 묵자 형님, 이제 아무 데서나 구두 벗지 마요. 하하,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