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다" 어느 가수가 음주운전 혐의로 적발된 후 한 이 말은 지금까지 수많은 분야에서 심심찮게 인용된다.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한 궁색한 변명인 이 말은 끊임없이 조롱거리가 되고 있고 그 가수는 아직도 재기를 하지 못하고 있다.　 이와 비슷한 말이 이윤택의 입에서 나왔다. "성관계는 있었지만 폭행은 하지 않았다"고 한 것이다. 이윤택의 성폭행 고발 이후 많은 사람들은 제발 그가 아무런 말을 하지 말고 자숙하기를 바랐다. 그런데 기자회견을 자처했고 리허설까지 했다고 하니 과연 연극인답다. 그리고 기자회견에서 내뱉은 말이 고작 그 어설픈 변명이었다.　이윤택의 변명에 대한 진실공방은 앞으로 끊임없이 펼쳐지겠지만 진실 여부를 떠나 문화예술계에 던진 충격은 어마어마하다. 성폭력은 미개한 사회 전반에 걸쳐 일어나는 고질병이어서 어찌 문화예술계에서만 자행된 일일까만 현재까지 드러난 것으로 보건대 문화예술계가 얼마나 폐쇄적이고 비열했던가를 짐작할 수 있다. 심지어 피해자들은 이윤택을 "그 세계에서는 왕이었다"고 표현했다. 밀양연극촌에 가본 사람이라면 그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한적한 시골마을 폐교를 털어서 만든 연극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이제 와서 생각하면 훤하게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윤택에 이어 연극계의 대부라고 일컬어지는 또 한 사람의 연출자와 대학에 몸을 담고 있으며 대중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배우까지도 성과 관련된 잘못이 드러난 이 시점에 연극계는 마치 폭탄을 맞은 듯 할 것이다. 만약 이윤택이 평생을 바쳤던 연극계에 눈곱만큼의 애정이라도 가지고 있었다면 기자회견 따위는 하지 말았어야 했다. 자신의 입장을 진솔하게 밝히는 짧은 입장문 한 장 정도면 족했을 것이고 칩거하고 자숙한 뒤 법의 심판을 기다렸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갖 표정 연기까지 사전에 리허설을 거쳤다는 사실이 발각된 후에는 모든 국민들이 아연실색했을 것이다.　기자회견에 나타난 그의 모습을 보면서 일부는 역겨웠다고 표현했다. 백발의 단발머리가 눈에 거슬렸고 온갖 표정연기와 계산된 듯한 몸짓, 억양 등이 구역질이 났다고 말했다. 그는 도대체 무슨 의도로 기자들 앞에 나섰던 것일까. 억울했을까? 아니면 그동안 자신이 한국 연극에 끼친 공로를 봐서라도 단 한 번만 면죄부를 달라고 호소하고 싶었던 것일까. 아무튼 우리는 그동안 그의 쇼맨십에 충분히 속고 있었고 문화예술계 일부분이 썩어들어 가고 있었다는 점을 까마득하게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몇 파렴치한들의 잘못으로 문화예술계가 집중포화를 맞는 것은 억울하다. 공교롭게도 고은이라는 시인과 이윤택이라는 연출가가 여론의 전면에 나선 것이 계기가 됐지만 우리나라 문화예술계가 그렇게 썩지는 않았다. 물론 예술가들의 남다른 감성이 보편적 사회 정서와 사뭇 다른 점은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돌을 던지는 것은 문제가 있다. 몇몇 파렴치한 예술인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예술인들이 사회적으로 존경받고 고매한 인품을 지녔다는 것은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우리 경주지역의 예술인들을 한 번 떠올려보자. 평생을 지역 연극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연극인 이수일 선생과 꼿꼿한 선비정신으로 후배들과 제자들에게 전형적인 아버지상을 구현했던 시인 이근식 선생의 모습을 생각한다면 문화예술계에서 번지고 있는 이 해괴한 사건이 상식적 도덕성에서 일탈한 개인의 잘못이라는 점을 금방 알게 될 것이다.　문제는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이 문제들이 자칫 정신문화를 이끌어가는 문화예술계 전체를 모독하는 것으로 흘러가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세상 어느 곳에서나 그런 사람들은 있기 마련이다. 온갖 불의와 범죄를 솎아내는 역할을 하는 검찰에서도 그런 일이 생겼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이해가 될 것이다.　이 더러운 논란에서 벗어나기 위한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하다. 문화예술계 스스로 나서서 이윤택, 고은과 같은 파렴치한들을 골라내고 자정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국민들은 조용하게 그들의 자정 노력에 힘을 실어주고 신뢰를 보내줘야 할 것이다. 분명한 것은 이윤택과 고은이 우리나라 문화예술계 전부를 대표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