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주의(保守主義)는 관습적인 전통가치를 옹호하고, 기존 사회 체제의 화지와 안정적인 발전을 추구하는 정치이념을 말한다`라고 되어 있다. 그리고 R.J. White 같은 사람은 `보수주의는 정치적 사상이라기보다는 마음의 습관, 감정적 상태, 삶의 방법에 더 가깝다` 라고도 말했다. 　그런데 경주인들이 생각하는 보수주의의 실체는 무엇일까? 경주는 원래 오랜 역사를 간직한 고대도시답게 전통문화를 중시하는 경향과 함께, 육부촌 씨족사회 문화의 잔영(殘影)이 아직도 존재하고 있는 고장임에는 틀림이 없어 보인다. 씨족이란 원래 혈연에 의한 집단의식을 가진 단체로도 정의될 수 있겠지만, 집단은 반드시 개인의 이기심과 마찬가지로 집단이기주의를 만들게 되고, 그 집단이기주의가 다시 배타성을 들어내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기도 하다. 　개인과 개인의 싸움이나 어떤 집단과 집단 사이의 갈등에는 반드시 그 배타성과 이기심이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인데, 인류역사를 통해 국가와 국가 간의 모든 분쟁 역시 기본적으로 집단이기주의와 배타성이 그 저변에 자리하고 있고, 그러한 집단심리가 극으로 치달을 경우에는 감정이 이성을 마비시켜 드디어 전쟁이라는 비지성적 집단 광기로 귀결되는 것이다.　삼한통일 이전에, 영남은 옛 신라의 고토(古土)였다. 그리고 호남은 백제의 고토였다. 지금 경주인들이 한반도에서 최초로 통일국가를 이룬 자랑스러운 신라인의 후예라는 자긍심을 가지고 있지만, 어디 한 번 생각해보자. 통일신라는 지금으로부터 무려 천 여 년이 훨씬 지난 까마득한 과거의 역사일 뿐인데, 과연 지금 신라 육부촌 씨족의 성골, 진골 후예들이 아직까지 경주에 몇 사람이나 살고 있을 것이며, 또 백제의 후예들은 몇 사람이나 아직까지 그들의 선조들이 살던 호남지방에 머물러 있을까? 한반도인은 원래가 모두 단군의 자손들이기도 하지만, 그간 수 십, 수 백 세대를 이어오며 서로 간 거주지 이동도 심했을 것이기에, 지금 우리들의 피속에는 모두가 한데 뒤섞인 동일한 한민족의 DNA를 간직한 형제자매이며, 일가친척이 아닐까?　현재 한반도 어느 지역의 주민이든 간에 그들의 조상이 어디에 살았는지 정확히 알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아직도 머리에 망건을 쓴 유림(儒林)에서는 크게 반발할는지 모르지만, 아무런 유전학적 추적과정이나 과학적 근거도 없이, 특히 최근에 많이 만들어진 그 쓸데없는 족보들은 이제 모두 다시 불태워버림이 옳고, 더 이상 혈연이나 지연이나 학연 같은 비이성적 카르텔 문화에서 벗어나, 오로지 전체 사회적 인간관계 속에서만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한다.　그리고 동서고금을 통해 반정부, 반체제 보수(保守)란 없는 것이며 보수란, 단어의 의미 그대로 전통적 가치와 현재의 사회체제를 유지시키려는 정치 사회적 이념에 다름 아니라는 점에서, 가장 보수적인 우리 지역민들은 결코 반체제적인 일단의 선동정치에 공감할 수 없다는 논리가 성립한다. 그간 대부분의 지역민들이 믿고 지지해온 일단의 구 보수주의자들은 사실 참된 보수가 아니었으며, 그들이야말로 오직 자신들의 사익(私益)만을 위해 보수를 참칭해온 가장 반 사회적 수구 이익 집단에 다름 아니었다는 점을 되새겨 보아야 할 때가 아닌지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경상북도라는 정치적 섬 가운데, 경주는 보수의 성지답게, 그리고 참다운 보수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보수 몰락의 원인을 만든 사람들에게 더 이상 구태정치를 허용해서는 안 될 것이며, 그것이 또한 어쩔 수 없이 중앙 의존도가 큰 경주가 살아갈 길이 아닌가 나름대로 현실적인 생각도 해본다. 그들이 경주를 배신했을망정 경주가 그들을 배신한 적은 없으며, 앞으로도 경주는 참다운 보수정치를 배신하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