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역에는 100년 이상 된 가게만 1만 곳이 넘고 200~300년 이상 된 가게들도 수천 곳에 이른다고 한다. 이 같은 현상이 생긴 것은 일본에서는 전통적으로 장인정신과 기술을 높게 평가하는 인식이 뿌리 깊게 남은 까닭이다. 가업의 대를 이어오고 스승과 제자간에 기술을 전수하는 것이 보편화됐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일본을 여행하면서 비싼 물가에 주눅이 들어 애써 번듯한 식당을 피해 허름한 가게를 찾아 한 끼 먹고 나서 받은 영수증이 수십만 원에 이르러 기절초풍을 한 경험을 해본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바로 겉으로는 낡고 초라하지만 대를 이어 맛을 보존해 온 음식 장인이 경영하는 식당이기 때문이다. 세계의 식도락가들은 그 집들을 일부러 찾아다닌다.　체코의 프라하에 가면 1499년 처음 시작한 흑맥주집인 `우 플레쿠`라는 식당이 있다. 마침 500주년이 되던 해인 지난 1999년에 프라하 여행을 갔다가 그 식당을 들른 적이 있다. 식당 안은 어둡고 낡았지만 세계에서 온 여행자들이 그 넓은 식당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흑맥주와 함께 먹는 거위 구이는 그 식당의 대표 메뉴고 프라하를 찾는 여행자들은 대부분 한 번쯤은 방문해 500년 전통의 흑맥주를 음미한다. 나는 당시 익숙하지 않은 식재료인 거위와 호프향이 너무 강한 흑맥주에 어리둥절하면서도 500년이라는 역사에 매료돼 `나도 와 봤다`라는 자부심을 느꼈다.　인도 델리의 찬드니초크에는 1913년에 지어진 식당인 `카림`이 있다. 이 식당은 무굴제국 말기 궁중요리사의 아들인 하지 카리무딘이 만든 식당이다. 그러니까 힌두국가인 인도에서 이슬람제국이었던 무굴제국의 궁중요리를 맛볼 수 있는 독특한 매력을 지닌 식당이다. 카림에는 항상 손님이 붐비고 식사시간에는 길게 줄을 서야 한다. 인도에 제법 정통한 여행자들은 델리에서 반드시 이 식당의 무슬림들이 먹는 커리와 탄두리치킨을 경험하려 한다.　이처럼 오랜 역사를 가진 식당을 가진 나라는 수두룩하다. 유럽의 주요 관광도시에는 최소한 200~300년 된 식당들이 창업 연도를 밝힌 간판을 내걸고 자신만만하게 영업을 하고 있고 그 식당들은 자신들의 대표 메뉴에 올인한다. 여행자들은 그들이 내놓는 음식을 먹으면서 단순히 혀끝에 감기는 미각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음식과 음식을 만들어 낸 장인의 역사를 한꺼번에 느끼려 한다. 그것이 바로 역사와 문화가 혼합된 관광 콘텐츠다. 부러운 일이다.　우리나라에서 100년 역사를 가진 식당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식당뿐만 아니라 가게도 없다. 무슨 까닭일까? 그것은 바로 조선시대부터 우리 사회에 뿌리박혔던 신분서열에 대한 관념 때문이다.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는 순서로 매긴 신분의 순위체계 때문에 상업에 종사하거나 기술을 개발하는 장인들을 천시하는 잘못된 관습이 작용했다. 오래된 역사를 가진 곰탕집 한 군데가 없고 전통 막걸리 공장이 없는 것은 바로 이 이유에서다. 3대째 내려오는 식당을 찾아 감탄하는 우리 국민들을 보면서 일본인이나 유럽인들은 무슨 생각을 가질까?　우리나라에서도 대중에게 공개되지는 않지만 가문의 비법이 전해져 내려오기는 한다. 종갓집에서 대대로 물려받은 가정식 음식을 간직하고 있고 간혹 언론을 통해 소개되기도 한다. 종부들이 선조들에게 물려받은 그 집안 특유의 음식을 소개하면서 후대에도 고스란히 물려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경주의 최씨 문중에서는 실제로 그 음식들을 대중에게 소개하기 위한 식당을 열기도 했다.　물론 역사가 맛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새로 시작했더라도 깊이 있는 연구를 통해 새로운 맛을 완성했다면 그 식당은 그 자체로 존재 가치가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요리 열풍이 일었고 텔레비전을 틀면 유명 연예인들이 탐스럽게 음식을 먹는 장면이 심심찮게 나온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역사와 전통을 소중하게 여기는 다른 국가들의 모범을 한 번 정도는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신라천년의 고도이면서 신라 음식 하나 재현해내지 못하고 있는 경주로서는 뼈아픈 현실이다. 신라의 문화유산을 내보이면서 신라의 왕실이나 서민들이 먹었을 음식을 재현해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음식업에 종사하고 있는 장인들의 관심이 없기도 하거니와 경주시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책임도 있다. 그러고서는 국제적인 관광도시를 만드는데 중요한 기능 하나를 갖추지 못하게 된다. 여행에서 음식은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경주를 찾는 여행자들에게 자랑할 수 있는 전통과 역사, 문화를 가진 음식 개발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