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느냐?" 고려조에 `만적의 난`을 일으킨 노비 출신 `만적`이, 사람은 누구나 동등하다고 외치며, 같은 사람이면서도 짐승처럼 천대받던 당시의 천민들을 일깨워 신분해방운동을 주도하였다. 물론 `만적`이전에 중국 사마천 사기에도 이미 나왔던 말이긴 하지만, 철저한 신분사회였던 당시에 일개 노비였던 만적이 감히, 요즘으로 말하면 인권운동을 벌였다는 것은 놀라운 사건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 사람이 법 앞에 평등하다고 되어 있다. 물론 법대로 실제로 평등한지는 모르지만, 우리 사회 일 단의 기득권들이 하는 행태를 보면, 마치 그들은 특수신분이기 때문에, 일반 서민들과는 다른 법을 적용받아야 하는 것처럼 보일 때도 없지는 않다. 　권력 세습은 우선 별개로 하고, 요즘 부(富)의 세습은 거의 합법적으로 보인다. 아버지가 부자이면, 원래 돈 한 푼 없던 아들들도 거의 반드시 부자가 되어 나타나는 것을 보면, 어느 누구도 실질적인 부의 세습을 부정하기는 어려워 보이고, 따라서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 얘기까지 나오게 된 게 아닐까? 　다시 말하면, 분명히 부자의 씨가 있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혹자는 이렇게 말 할 것이다. 누가 니들 보고 부자가 되면 안 된다고 한 적이 있느냐? 니들도 돈을 벌어 부자가 되면 될 터인데, 왜 자신의 무능함은 모르고, 유능한 부자를 탓하는가? 별로 틀린 말이 아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누구나 노력하여 부자가 될 수 있고, 또 누구라도 좋은 스펙을 쌓아 출세하면 된다. 　그런데 문제는, 같은 노력에도 쉬 이루어 질 수 있는 환경이 있고, 아주 어렵거나 아예 불가능한 환경도 있다는 것이다. 즉, 기회균등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기 때문에, 많은 젊은이들이 지금 좌절하고 있는 것이며, 이미 기득권에 편입된 사람들은 비기득권의 신분상승을 막기 위해 사회구조 자체를 그들에게만 유리하도록 재편해 온 것은 아닌지? 　예를 들면, 어떤 공기업의 경우, 입사시험에 미리 내정된 신규직원을 뽑기 위해 전형이라는 형식을 거치기는 하지만, 이미 내정된 사람들의 입사를 합법화 시켜주기 위한 들러리로만 동원된 다른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사회의 신분을 규정하는, 학력, 금력, 권력의 취득 기회가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될는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 그러한 불공정에 익숙해져 있는 듯이 보이고, 그러한 체념들이 쌓여 은연중에 우리사회는 새로운 신분사회화로 진행되어 온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그 옛날 `만적의 난` 시대와 별반 다름이 없는 귀족 그룹(기득권)과 서민 (비기득권)그룹으로 나뉘어 지면서, 어떤 이들은 자신의 정체성마저 찾지 못하고 혼란스러워 하는 모습도 보이게 된다. 그리고 객관적으로 보아 비기득권에 속해 보이는 사람들이, 오히려 같은 비기득권 사람들을 멸시하며, 비기득권의 신분상승을 막으려는 기득권을 지지하는 모습도 흔히 볼 수 있는데, 그냥 단순히 아이러니한 현상으로만 치부될 일은 아니며, 그것이 바로 지금까지 기득권이 비기득권을 향해 노려온 학습효과에 다름 아닐 것이다. 우리는 지금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신분상승의 사다리를 걷어 차버린 현재의 사회구조에 순응할 것인지 아니면, 좀 더 공정한 사회 건설을 위해 궐기하고, 다시 새로운 사다리를 세워야 할 것인지? 상품의 겉 포장지에 불과한 스펙 신분사회를 버리기 위해서, 이젠 좀 더 사람의 내면이 지닌 무게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새로운 척도가 만들어져야 할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우리 지역에도 좀 젊고 참신한 인물들이 본인의 스펙 따위에 구애받지 말고 대거 현실정치에 참여하여 새로운 시대의 주역이 되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미래는 구세대의 것이 아니며 바로 신세대 여러분들의 것이기에….　"정치인과 부자의 씨는 따로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