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 행복의 본질을 내면의 합리성에 기초한 자기결정성(自己決定性)에서 찾았고 이 자기결정성을 `자율`(自律)의 근본으로 보았다. 칸트는 `도덕`과 `자율`을 배타적·택일적 관계가 아니라 전자에 이미 후자가 내포되고 후자는 전자가 성립되게 하는 즉 상호 내재적인 관계로 파악하였다.　조직사회에서의 복무(服務)를 생각하면 `규율`과 `자율`이 떠오른다. 이들은 본래 상호 병존하기 어려운 상쇄적 관계인가 조화될 수 있는 동반적인 관계인가?　과거에 공·사 조직 할 것 없이 `출근부`란 것이 있었다. 이는 직장인들이 아침에 출근하면 맨 먼저 신고하는 장부로서 학생들의 출석부와 같은 것이며 직원 근태상황을 관리하는 부서(주로 `총무과`란 이름이 붙여졌다)에 비치되어 있었다. 날짜별로 개인 성명란에 날인 또는 서명하도록 되어 있었고 종이에서 기계식으로 변천하기도 했다. 통상 세 번 지각이나 조퇴를 하면 하루 결근으로 처리되었다. 출근이 늦을 경우 부서 동료에게 부탁하여 대리 서명하게 하다가 총무과 직원에게 들켜 경고 처분 등을 받는 일도 더러 있었다.　민간기업 중 1970년대에 이미 출근부를 과감히 폐지하니 직원들의 출근 성적이 더 좋아졌다는 사례도 있었다. 한편 이 출근부가 근로자의 복무 자율성을 통제하는 수단일 뿐이라는 논란이 일자 사용자 측이 이를 폐지하고 대신에 퇴근부를 만들어 더 옥죄더란 이야기도 있었다.　공직 초년시절인 1987년에 `중장기 행정발전 계획` 작업팀에 참여할 때다. 공직 자율성 증진 차원에서 공무원 출근부 폐지론이 제기되자 필자와 같은 젊은 팀원은 단기과제로 1~3년 내에 일제히 폐지하는 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위로 보고하는 과정에 반대가 심했다. `출근부를 폐지하자는 게 말이 되느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1992년부터 4급 이상, 1997년부터 5급 이하 전 공무원에 대해 폐지하는 단계별 개선안으로 후퇴되어 겨우 채택되었다. 　그러나 바로 그 이듬해인 1998년 5월에 결단적으로 전면 폐지되었다. 그리고 그 후에 출근 불량이 증가되는 등의 현상은 전혀 없었다. 나이가 많거나 직위가 높을수록 인간의 자율 통제에 대한 불신에서 벗어나기가 더 어려운 법인가! 그 고루한 반대 정서는 비겁하기까지 했던 것이다.　이보다 더 큰 범위의 국민생활 관련 제도로서 `통행금지`(通禁)라는 제도가 있었다. 이 `통금`은 여느 나라 역사에도 치안관리 등 목적으로 있던 것으로 일본 식민통치 시절에서는 억압 수단으로 시행되었고, 광복 후 미군정 때도 실시되었으며 그 후 이승만 정부 등이 이를 계승하여 국민통제 수단으로 유지했던 것이다. 　보통 밤 12시부터 새벽 4시까지 일반국민의 통행을 금지하되 위반 시에는 경찰서에 잡혀 있다가 새벽에 해제되면 과태료를 물고 방면되었다. 1960년대에 와서 제주도와 충북도 지역, 경주 등 관광지 일원은 폐지되었고 또 전국적으로도 크리스마스나 연말연시 등에는 일시적으로 해제됐다. 　1980년대에 와서 통금 폐지론이 대두되자 이 또한 반대 목소리가 대단했다. 사회 지도층에서조차 폐지하면 심야 범죄 천지가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1982년 1월에 결단적으로 전면 폐지되었다. 그리고 그 후 그로 인한 범죄 증가 등의 기록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반대의 목소리도 비겁했던 것이다.　모든 제도가 그러하듯 복무나 사회질서 관련 제도도 그 탄생의 동기가 충분하더라도 필시 그 수명은 있다. 그러나 우리사회에는 내구연한이 다한 제도에 대해서도 `현재 상태`(status quo)를 유지하려는 기류도 강한 법이다. 　출근부나 통금제도의 추억을 보면 그 폐지에 대해 완고 무성한 반대론들이 일순 자취없이 사라졌고 지금은 어디에도 없다. 칸트의 도덕과 자율의 관계처럼 복무에서의 규율도 그 본질은 `자율`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이 자율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결단`이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이제 복무와 관련한 원시적 규제는 자율적으로 풀어볼 때가 되지 않았겠는가? 앞뒤 꽉 막힌 출퇴근 시간, 정해진 중식시간 등도 해제하여 그야말로 본격적인 탄력 시간(flexible time) 복무 체제로 일대(一大) 전환을 시도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진보적 사고를 표방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어쭙잖은 복무란 이름의 제도, 그 본질이 `자율`임을 논하고자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