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도시의 소멸`이 회자되는 요즘 우리 경주는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 점에서 경주가 신라천년왕조를 지탱해왔던 그 원천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우리 경주는 수년 전 터키 이스탄불과 공동으로 엑스포를 개최한 적이 있다. 이것은 과거 천 년 전 경주와 이스탄불, 두 도시 간의 교류를 기념하자는 의미가 깊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어찌하여 오늘날 우리 경주시민들은 과거의 이런 영광, 즉 국제적 포용력을 자랑하는 것과는 달리 어떤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이 경주 출신인지 아닌지 부터 따지게 되었는가 말이다.　신라천년의 영광이 지속된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정치적으로 타 국가에 비해 안정성을 유지했다는 것이 가장 크게 작용하였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앞서 말한 것과 같은 포용력도 크게 작용하였다고 생각한다. 경주에 산재된 다양한 역사적 유물 중에서 이미 그 증거는 수없이 나타나고 있다.　신라 제38대 원성왕의 능인 괘릉에는 서역인의 모습을 한 무인석이 문인석과 나란히 지금까지 전해지면서 당시 신라인의 폭넓은 포용력을 보여준다. 일반 백성도 아닌 왕릉에다가 서역인의 석상을 세운 것이다. 놀랍지 않은가! 그뿐만 아니다. `로만글라스`라고 불리는 당시 귀족들의 호사품 중의 하나였던 최고의 유리공예품도 황남대총에서 발굴되어 보물 제620호로 지정되어 국립경주박물관에 잘 보존되어 있다. 이것은 5~6세기의 유물로 추정되고 있다. 당시에는 로마의 신문물이 지구 반 바퀴를 돌아 신라의 수도인 경주로 전해지기까지 불과 6개월 정도밖에 소요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러한 신라인의 국제적 포용력으로 말미암아 8세기경 서라벌은 인구수 기준으로 볼 때 당시 세계 4대 도시의 하나였다고 한다. 예컨대 비잔티움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현재의 이스탄불), 이슬람의 세습왕조인 아바스왕조의 수도였던 바그다드, 그리고 중국 당나라의 수도였던 장안과 나란히 말이다.　`삼국유사`의 기록을 통해서도 당시 서라벌의 위세는 충분히 짐작이 가능하다. 기록에 따르면 수도 서라벌에는 금으로 장식한 금입택(金入宅)이 30여 채에 이르고 사찰의 수만 해도 200여 개소가 넘었다고 한다. 당시 신라의 금세공 기술은 지금 보더라도 대단하다. 그리하여 아라비아 상인들은 서라벌을 `황금의 도시`라고 불렀다지 않은가! 그러나 이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당시 서라벌의 가구 수가 17만 8,936호로 나온다는 점이다. `삼국유사`의 기록이다. 생각해보라. 불과 50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나라는 한 집안에 3대가 함께 사는 대가족 시대였다. 이때 세대 당 최소 2명이라고 쳐도 최소한 6명이 한 집안에 살았다는 말이다. 8세기 당시에는 더욱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최소 6명이라고 쳐도 107만 3,616명이다. 가볍게 인구 100만을 뛰어넘는 도시가 된다. 그러므로 따지고 보면 경주의 인구는 신라의 수도였던 이후로 오늘날까지 꾸준히 감소해왔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과거 서라벌의 영광이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니었음을 분명히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말도 통하지 않고, 심지어 신라 사람도 아닌 서역인이라고 하더라도 왕성에서부터 일반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수용한 그 포용력, 그 국제성, 그 개방성이야말로 `위대한 영광`의 주요 요인 중 하나가 되었던 것이다.　아시다시피 세계 최강국 미국의 영광의 배경에는 순혈주의 아메리칸을 고집하기보다는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다문화·다인종의 이민자들을 받아들인 결과 충분한 인재풀이 마련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오늘날 대체적인 시각이다. `서라벌의 영광`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전해오는 신라의 위대한 문화유산들의 배경에는 신라인들의 포용성·국제성·개방성이 작용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언제나 열린 마음으로, 그것이 설령 지구 반 바퀴 저편 낯선 인종의 것이라 할지라도 두려워하지 않고 받아들일 것은 과감히 수용한 결과 찬란한 신라 천년의 문화를 꽃피울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러므로 다시금 생각한다. 우리 경주가 지방소멸도시란 불명예의 리스트에 오르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신라인들의 그 `오픈 마인드`를 배울 필요가 있다.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서는 시민 스스로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야 한다. 그래야만 외지의 젊은이들이 찾아오고 타 지역 기업들도 성공적으로 유치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