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들어서 필자가 속한 한 학술단체가 오는 3월 초 남북학술회의를 개최한다고 한다. 정보기술분야에서 2005년 이후 13년 만이다. 1996년 중국 연길시빈관에서 열린 `96코리언컴퓨터처리국제학술대회`에 참석하였다. 한국과 북한 그리고 미국,중국,일본에서 학자들이 참석하였고 대표 기조연설은 북한,중국,한국 순으로 진행되었다. 　그런데 초반부터 문제가 일어났다. 북한대표 연설 초반에 "위수김동(위대한 수X 김XX동지) 교시"운운이 언급되자 좌중에서 학술회의에서 조차 이념타령이냐고 큰 소리가 나고 일부 회원은 자리를 박차고 나가기도 하였다. 　중국동포들이 나섰다. 북한 대표들은 그 문구가 들어가야 이 학회에 참석할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고 했다. 그 다음은 국호를 부르는 과정에서 또 고함소리가 났다. 이것도 국호 대신 남측과 북측으로 부르기로 정리되었다. 북측의 논문 서론에는 "위수김동 교시" 운운 문구가 들어있었다. 1999년 학회는 특별한 문제없이 지나갔다. 그뒤 필자는 2000년부터 직접 남북학술회의를 조직하였다. 　2000년 심양 동아시아언어처리 국제학술대회는 중국 및 조총련 학자들이 참석하였고, 2002년과 2003년 북경 남북언어정보산업표준회의는 정보기술, 의학 및 자연과학용어를 표준화하는 회의를 개최하였고, 북한과 조총련 산하 재일본 과협 학자들이 참석하여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2000년 615선언 이후엔 그 문구대신 "615정신에 따라서"만 포함하면 되었다. 논문에서 그 문구도 자유로워졌으나 일부 학자들은 여전히 포함하고 있었다. 　특히 2005년도엔 표준협회가 지원했는데 그간 회의는 정치바람으로 냉탕온탕을 거듭하며 간헐적으로 열렸다. 학술대회 조직에는 중국조선어신식학회,재일본과협,북경대학 조선문화연구소의 기여가 컸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 때 북한의 1차 핵실험으로 얼어붙기 시작하여 이명박 정부 때 천암함폭침사건, 금강산 민간인피살사건 등으로 524조치가 나면서 중단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1996년 회의 때 북한이 열의를 보인 것은 한글코드 부분이었다. 국제표준(ISO)에 "Hangul code"로 표기가 된 점과 자모순서가 한글 자모순이어서 북한의 조선글의 자모순서가 다르므로 이름은 Korean Character로 하고 자모순은 조선글순으로 하자고 하였지만 양측의 어문체계와 관련되므로 단숨에 성과를 낼 수 없었다. 살펴보면 조선어학회에서 한글맞춤법을 제정할 때 주시경의 형태주의와 박승빈의 표음주의가 격렬하게 대결하였는데 형태주의로 결론 났다. 　그런데 조선글에서는 표음주의 색체가 강하게 나타나 있다. 두음법칙이 없고 된소리와 복자모는 뒤쪽에 배열된 것이 그렇다. 특히 초성의 `ㅇ`은 `ㅎ`뒤에 배치된 것이 특이점이다. 그때 조선글 코드 KPS9566도 입수하게 되었다. 615선언 이후 해외거주 북한주민의 사상 이탈을 방지하려고 615봉사소가 심양에 설치되었다. 남북언어산업표준화 3차회의가 2005년 심양에서 열려서 용어통일 작업을 계속하였다. 이때 615봉사소 오모소장은 토요일에도 땀을 흘리며 일하는 남북한 학자들에게 말한다. "선생님들 정말 딱합니다. 토요일까지 이렇게 열심히 일을 하시다니요! 우리 공화국(북한)은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는 열심히 일하고 토요일은 학습하고 일요일은 가족과 함께 휴식을 취합니다"라고 한다. 　토요일에 그들은 무슨 공부를 하는 걸까? 이념교육이라 한다. 그래서 그런지 북측 사람들은 계속해서 회의하기를 원했다. 회의를 마치자 오소장은 호텔에서 지급한 연필과 메모지를 모두 수거하면서 "이 연필과 공책은 박사선생님들이 쓴 것이라 우리 아이들에게 주면 공부 잘하게 되갔지요?"라 한다. 　이념은 달라도 아버지는 똑 같구나. 2006년 봄 학술교류협의차 금강산에 두번갔다. 가을에 정보기술책 3만권 기증에 기여한 덕에 금강산에서 식사접대를 받았다. 2007년엔 평양에서 학술교류협의를 하였다. 이번 남북학술회의가 잘되었으면 좋겠다. 매번 남북학술회의 때 느끼는 거지만 국체가 다른 이상 민족보다 이념 곧 국체가 우선인 것은 해결할 방법이 묘연해 보였다. 과연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공통분모는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