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3차원 그래픽이지만, 국내 최초로 `천년 왕국의 부활`이라는 영상을 통해 신라왕궁의 모습을 약 5년 전 쯤에 가시화해 본 적이 있다. 그리고 이어서 현재 `황룡사 역사관` 내에서 년 중 상영되고 있는 `호국 황룡사` 역시 3년 가까운 씨름 끝에 완성한 작품이지만, 고증에 관한 한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크다 해야 할 것이다. 불과 런타임 15분 정도의 짧은 입체영상이지만, 무려 수 만 컷에 달하는 가상의 스틸 이미지가 제작되어야 3 차원 동영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일반인들은 잘 모를 수도 있다. 10여 명 이상의 컴퓨터맨들이 최소한 1년 이상 거의 철야작업을 강행해야 가능한 작업이었다. 그런데 그 짧은 영상 한 편 만드는데 3년이란 긴 기간이 소요된 중요한 이유는 다름 아닌 `고증`이라는 문제였다.　물론 진정성이 담보되지 않는 문화재 복원을 억제하는 `유네스코 헌장`도 있듯이 사학자들의 입장에서는 진정성 있는 고증을 강조할 수밖에 없겠지만, 지금 경주시가 추진하고 있는 신라왕궁 복원사업의 가장 큰 걸림돌이 그 고증문제라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일 것이다. 그런데 내가 가지는 의문은, 그럼 그렇게 사업을 지연시키며 열심히 고증에 매달리기만 하면, 과연 진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고증이 가능한가? 라는 것이다. 　열대우림 정글속에 묻혀 있다가 발견되어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캄보디아의 `앙코르왓트`는 건물의 형태는 물론, 건물 벽에 그려진 벽화나 음각, 양각의 조각 미술까지 충분히 식별할 정도로 그 모습이 온전히 남아 있기 때문에, 작년 외교부의 의뢰로, 그 역시 3차원 그래픽 복원작업을 하면서도, 별다른 고증간섭 없이 최단기간에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고, 현재 해운대에 있는 아세안문화관을 비롯해 해외 여러 장소에서도 절찬리 전시가 되고 있지만, 고증시비 같은 것은 아직 없다.　그런데 우리 경주의 신라왕궁은 잔존 유적은 물론, 왕궁의 형태를 짐작이라도 해 볼 수 있는 그림 하나 존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왕궁의 정확한 위치조차 현재까지도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시간만 지나면 고증이 가능할 것인가? 라는 얘기이다.　 실물복원과는 전혀 거리가 먼, 가상 그래픽 속에서의 복원조차, 대략 일 년 반 정도의 기간이 소요될 작업을 거의 두 배의 기간에 두 배의 작업으로 늘어지게 하여, 당 사업체가 막대한 손실을 감당해야 했고, 영상 개봉 역시 크게 지연되었다는 점에 비추어 보면, 진정성을 담보하지 못하는 왕궁복원을 포기하던지 아니면, 고증을 포기하지 않는 한, 신라왕궁 문화재 복원사업의 성공은 절대 보장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것이 내 개인적인 판단이다.　`고고학은 픽션`이라고 말한 어느 미국 학자의 말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흔적 없는 과거에 대한 고증 자체가 물리적인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일이기에, 어쩌면 고증을 포기하는 것이 가장 정확한 고증이 아닌지도 모르겠고, 거기다 우리 사학계에서는 해방 이후 70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일제시대 일본의 고건축가인 `후지시마 가이지로`가 그려놓은 신라왕경 추정도를 아직도 쓰고 있다고 하니, 제대로 된 발굴조사 과정도 없이, 오로지 줄 자와 폴대를 들고 지극히 원시적인 방법으로 측량하여 그려놓은 거의 백년전의 그 왕경 추정도가 과연 얼마나 정확하며 믿을만한 것인지? 지난 해 어느 땐가 경주시청에서 열린 고증회의에서, 학자도 아닌 컴퓨터 엔지니어로 참석하여 의문을 제기했다가, 무식한 업자 주제에 감히 사학계의 권위에 도전한 괘씸죄를 톡톡히 입은 적이 있었다.　물론 나는 컴퓨터맨일뿐, 비 학자이지만, 비 과학적인 주장을 혐오한다. 우리가 요즘 다 아는 GPS의 오차를 센티미터 단위 이하로 줄여 놓은 DGPS 측량은 거의 오차 자체를 무시해도 좋을 정도로 정확도가 높은 것이며, 현재 발굴되어 있는 옛 신라방의 흔적만으로도 훨씬 더 정확한 왕경구조를 밝혀낼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많이 보아온 사극 영화나 드라마는 역사의 기록을 참조하지만 픽션일 뿐이며, 그러나 그것대로의 작품성을 가지는 것인데, 실체 없는 왕궁복원을 놓고, 고증 시비로 세월만 보낼 것이 아니라, 신라가 전설이나 신화가 아닌 이상, 실존했던 고대국가라는 점, 그리고 현재 출토되어 있는 많은 금제 부장품만으로도 유추할 수 있는 화려한 문명의 흔적을 마음껏 상상하고, 영상을 통해서라도 재현 가시화, 관광상품화부터 하는 것이 훨씬 현실적이며 실용적인 작업이 아닌지 모르겠다. 　경주의 역사와 문화재는 우리 민족과 경주시민들이 조상으로 부터 물려받은 문화유산이기 때문에, 어떠한 학문적 이익에 앞서 지역주민의 이익이 우선하여야 한다는 무식한 생각을 나는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