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인으로서 신화적인 업적을 이룩한 사람이 정치·행정 분야로 이동해 가서 공직자로서는 성공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또 시야를 좁혀 보면 조직의 실무자일 때는 뛰어난 역량을 보이다가도 간부급으로 직위가 올라가서는 평가를 잘 받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또한 중앙행정이나 기획 업무에 탁월한 사람이 지방행정이나 집행 업무에는 쩔쩔 매거나 역으로 이와는 반대인 경우도 있다. 　이런 현상은 개인마다 소질과 성향 또는 전문성이 달라서이기도 하겠지만 조직 환경과 본인 위치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인식이나 행동에 있어서는 자신의 종전의 `패러다임`(paradigm)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사업가와 공직자간, 이공계와 인문계 간처럼 전공 자체가 다른 분야 간의 횡적인 이동에 있어서는 그 변화의 적응에 일정한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겠으나, 조직의 천재라고 불리던 사람도 같은 직렬(職列 : 직무의 종류가 유사하고 그 책임과 곤란성의 정도가 서로 다른 직급의 군(群)) 내 종적인 이동인 승진을 했거나 중앙·지방 간 에 전보를 한 경우 그에 부응하는 변신을 하지 못하면 곧바로 근본 역량 한계로 지적된다.　미국의 경제학자 크루그먼(P. Krugman)이 쓴 책 `국가는 회사가 아니다`(A Country is not a Company)에는 "아무리 거대한 기업을 운영하더라도 비즈니스에서 얻은 경험은 국가경제를 운영하는 전체 측면에서 보면 지극히 작고 좁은 한 분야"라고 하고 있다. 　그래서 "국가를 회사처럼 경영하게 되면 필연코 국가경제뿐만 아니라 국민과도 난타전을 벌이게 된다. 성공한 기업가들의 그릇된 조언으로 국가 경제가 비참하게 파멸을 초래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정부에서 국무총리실에 근무할 때 모신 P총리는 국가 기간산업 분야에서 전설적인 성취를 보인 기업인 영웅이었다. 취임할 때 그룹 연구소 박사 연구원 두 사람도 데리고 왔다. 점차 총리직을 수행해 가면서 짜증이 늘어갔다. 간부회의 시뿐만 아니라 외부 위원들 앞에서조차 심하게 화내는 일도 자주 보였다. "안 된다는 것이 왜 이리 많으냐? 예산 조치하는 데 무슨 시간이 그렇게 오래 걸리느냐?"는 것이었다. 사임의 직접 원인은 따로 있었으나 결국 5개월 만에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공·사의 조직 관리에 있어 인간 욕구와 동기 요인, 리더십 원리 등과 같이 공통적인 요소도 있으나 조직 이념과 체계 등의 차원에서는 분명히 다른 점이 있다. 기업은 `이윤과 생산성`이 최고이지만 공조직은 효율성을 넘어 소수·약자·절차를 포함한 `전체적 고려`를 해야 한다. `민주성`이 더 중요한 상위 이념이요 본질적 가치이기 때문이다.　직급·직위에 따라서도 매우 다른 모습을 보이는 사람이 있다. 실무자나 과장 때까지는 소위 `날고 기던` 사람이 국장이 되면서 이상하게 무능해지는 예를 볼 수 있다. 이는 원래 `한계 과장`이던 자가 운 좋게 승진했거나 아니면 과장 때까지의 시각·행태 등을 그대로 가져갔기 때문이다. 　옛 P선배는 과장급 때까지는 후배들한테 멋있는 선배였다. 소위 `가장 닮고 싶은` 공직자 미래상이었다. 그러나 국장급이 되자 매력이 떨어졌다. 그가 말하고 지적하는 것들이 잔소리로 들렸다. 그리고 그 후 별로 인기 없는 선배로 공직을 마감했다. 이는 필시 과장급 시절의 `패러다임`을 그대로 가지고 위로 올라갔기 때문일 것이다.　중앙과 지방 행정에 있어서도 이와 비슷한 `적응 불량` 현상이 발견된다. 기본적으로 중앙은 `기획`과 `인문지리`가 우선이고 지방은 `소통`과 `자연지리`가 먼저이다. 그러므로 중앙에 있다가 지방 조직에 가면 무엇보다 주민과의 접촉을 위해 현장부터 가보고 자연지리를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 지역은 국민 복지를 위한 행정의 시발점이요 종착지인 것이다.　그래서 어느 한 분야 또는 일정 직급 시절의 조직 천재가 다른 분야 또는 다른 직위에 가서는 문제 인력이 되는 경우조차 종종 목도하게 된다. 또 중앙 또는 지방의 천재가 지방 또는 중앙에서는 바보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한 분야의 천재가 반드시 다른 분야에도 천재일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러나 스스로 이를 지각하지 못하는 이른바 `인지의 부조화` 때문에 결국 재앙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천재도 `패러다임`의 변화 없이 아무데나 접근하면 그렇게 되어버린다. 변신이 안 되면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