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코 페즈는 경주와 같은 고대 역사문화 도시다. 페즈의 메디나(구시가지)는 그야말로 미로 그 자체다. 9천개가 넘는 골목으로 이뤄진 이 지역은 건장한 남성 한 사람이 겨우 빠져나갈 정도로 좁고 길게 형성돼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곳에는 수많은 식당과 숙소, 가죽공방, 모로코 전통 공예품점 등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사람들은 이 장면을 보러 모로코까지 간다. 카사블랑카와 마라케시 등의 관광도시도 있지만 나귀의 배설물이 가득한 이 골목길로 세계의 여행자들은 꾸역꾸역 몰려간다.　골목을 헤매다보면 수천년 동안 그들의 전통 방식인 무두질을 고수해 온 가죽 염색 공장이 있다. 가죽에 붙어 있는 고기가 썩어가는 냄새와 가죽 특유의 고린내가 진동을 하는 그 공장을 보기 위해 여행자들은 콧구멍에 박하잎를 끼워 넣고 다가간다. 옆 건물의 옥상에 올라가 무두질 광경을 내려다보며 찍은 사진들은 모로코 여행의 백미로 남기도 하고 개인적으로는 `인생샷`으로 보관하기도 한다.　인도의 바라나시 갠지즈강 가트를 끼고 있는 골목길은 페즈보다 더 유명하다. 4천년이 넘는 도시의 역사를 말해주듯 그 골목은 구불구불하고 퇴락했지만 인도를 찾는 여행자들은 기어이 그 골목길을 걷기를 원한다. 그 골목의 끝에는 힌두교의 전통 장례풍습인 화장을 하는 넓은 공간이 있고 그 화장터에는 하루종일 주검을 태우는 희고 매캐한 연기가 피어오른다. 골목길에는 24시간 상두꾼이 오렌지색 천을 덮은 사체를 운구하고 그 뒤를 따르는 유족들의 흐느낌이 들린다.　그 그로테스크한 장면을 떠올린다면 다시는 바라나시의 골목길을 가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골목길 안에는 작은 시장도 있고 인도에서 가장 맛이 있다는 라시 가게도 있다. 허름한 짜이가게 앞에 서서 뜨거운 짜이를 홀짝거리고 값싼 숙소와 음식점들을 누비며 인도 문화의 진정성을 체험하는 놓칠 수 없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에 인도 여행에 바라나시 골목길을 뺀다면 그야말로 `앙꼬 없는 찐빵`이 된다.　이란의 사막도시 야즈드도 오랜 역사를 갖는다. 카라반들이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의 차와 비단을 실어 서역으로 나르다가 문득 머물게 된 오아시스 도시인 야즈드는 아직도 그때의 골목이 그대로 남아 있다. 골목길 중간에는 이란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모스크인 `마스지드 조메`가 이정표 역할을 하고 그 모스크를 중심으로 방사선 형태로 뻗은 골목길은 마치 아라비안나이트에서나 볼 듯한 장면이 연출된다.　이슬람 제국이 들어서기 전 페르시아 제국의 국교였던 조로아스터교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어 야즈드의 황토색 골목길을 걷고 있노라면 문득 중세, 혹은 고대의 페르시아 제국 한 가운데 떨어진 느낌이 든다. 야즈드의 고즈넉한 골목은 이란 여행의 백미로 좁은 골목길을 터벅터벅 걸으면서 페르시아 문화의 향기를 맡는다.　골목은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살아있는 민속사 박물관이다. 과거에는 고단한 삶의 증표처럼 골목은 누추함의 대명사였고 보여주기 싫은 삶의 부끄러움이었다. 그러나 시대는 변했다. 그 모습이 곧바로 관광자원으로 연결이 되고 학술적 가치를 지닌다. 역사문화적 가치는 물론이다. 골목 안에서 이웃간의 정이 돋아났고 소박한 서민들의 먹을거리와 잠자리가 보존돼 왔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에는 그 골목길이 하나 둘 사라지고 있다.　경주에는 최소한 100년이 넘도록 서민들이 자발적 주거지역으로 형성한 골목길이 있었다. 바로 쪽샘지구다. 마치 농부의 투박한 손금 같았던 골목길이 한순간에 지워져 버린 것은 두고두고 아쉬운 대목이다. 중앙정부의 관료가 책상머리에 앉아서 볼펜 하나로 쪽샘지구 철거를 결정했겠지만 그 전에 경주시의 주요 공직자가 그 지역을 허물고 공원과 관광지구로 만들어야 한다고 건의했을 것이 분명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옛것을 허무는 데는 이골이 났다. 약간만 허름해도 허물어 버리고 새 건물을 짓는다. 새 건물을 짓는 데는 한 순간이지만 오랜 세월 사람들의 손때가 묻은 골목길을 형상하는데는 최소한 수백년이 걸린다. 경주에 남은 골목길은 어디일까. 있다고 하더라도 점점 상업화 되고 순수의 모습을 잃어간다. 세월이 흐르고 나서 무릎을 치고 탄식을 한다면 그때는 이미 늦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