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미국 워싱턴 DC 케네디센터에서 열린 제40회 케네디상 시상식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부부가 불참했다. 미국에서 권위를 인정받는 대중예술가를 위한 상인 케네디상은 대통령 부부가 참석하고 축하행사를 즐기는 것이 관례였다. 물론 역대 대통령 중 지미 카터, 조지 부시, 빌 클린턴 전 대통령도 임기 중에 불참한 전례는 있다. 그러나 퍼스트레이디라도 꼭 참석해 수상자를 축하했다.　이번 케네디상 수상자는 가수 라이오넬 리치, 글로리아 에스테판, 래퍼 LL 쿨 J, TV 프로듀서 노먼 리어, 무용수 카르멘 드 라발라데였다. 이번 시상식에서 현직 대통령인 트럼프 부부가 참석하지 않은 것은 트럼프 자신의 의사가 아니었다. 올해 시상자들이 지난 8월 버지니아주 샬러츠빌에서 일어난 유혈시위 이후 인종 갈등을 조장하는 듯한 트럼프 대통령에 반발하며 시상식 보이콧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수상자들의 반발에 트럼프도 즉각 반응했다. 수상자들이 만약 트럼프가 참석하면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관례를 깨고 불참 의사를 밝혔고 이번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은 것이다. 　백악관 측은 트럼프의 입장을 성명을 통해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 부부는 올해 케네디상 수상자들이 어떠한 정치적인 방해 없이 축하할 수 있도록 행사에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시상식에는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주최로 열렸다. 틸러슨 국무장관은 축하행사에 참석해 대통령 대신 수상자들을 축하했다.　수상자들은 환호했다. 래퍼 LL 쿨 J는 "대통령이 참석했다면 오히려 주의가 분산됐을 것"이라며 "예술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라이오넬 리치도 "오늘 내가 얼마나 흥분했는지를 설명하다가 목이 쉴 지경"이라고 비꼬았다. 글로리아 에스테판도 "트럼프 대통령이 참석하지 않아 고맙다"며 "수상자의 실제 성취보다 다른 것이 더 논란이 된다면 누구라도 기운이 꺾일 것"이라고 말했다. 95세의 고령인 노먼 리어는 "트럼프 대통령의 불참이 서운하지 않다. 내가 악수하고 싶은 손이 아니다"고 말했다. 축하행사 진행을 맡은 줄리 앤드루스는 "예술은 국경, 문화, 정치를 초월한다"며 "오늘 행사가 분열적인 담론에서 한 발짝 물러나 모두를 위한 예술의 우수성에 감탄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 상황은 문화 선진국인 미국의 현재 모습이다. 문화와 예술가들이 가지는 자존심과 그들이 정치적 이념을 어떻게 자유롭게 드러내며 잘못된 권력에 저항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예술가들은 서슴없이 권력의 잘못을 지적했고 대중들은 호응한다. 그리고 권력의 정점에 있는 대통령조차도 기분이 나쁘지만 그 행위를 존중한다. 트럼프는 기분이 상했지만 점잖은 말로 예술가들의 의사를 완곡하게 존중했고 국무장관이 대신 참석하도록 했다. 과거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에서 일어났던 블랙리스트 사건과 비교해 본다면 우리나라가 얼마나 문화적 후진성을 가지고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상황이다. 아직도 권력의 눈치를 살펴야 하고 그 권력에 줄을 서야 사회적 활동을 왕성하게 할 수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은 참으로 자존심이 상하는 대목이다. 중앙 권력과 문화예술계의 관계뿐만 아니라 지방에서도 이 현상은 공공연하게 이어지고 있다. 소위 제도권 예술가들이 아니라면 지원과 육성에서 제외되는 것이 현실이다.　문화와 예술은 그 사회의 성숙도를 가늠하는 척도다.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잘못된 권력에 대해 곧은 말을 하고 권력은 그들의 말을 겸허하게 수렴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이 시대의 문화예술가들은 권력의 눈치를 봐야 하고 쓴 소리 했다가는 괄호 밖으로 밀려난다.　문화예술가들의 정신은 비교적 순수하고 이해타산이 적은 편이다. 물론 모든 이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보편적으로 그렇다는 말이다. 그래서 문화예술가들이 사회에서 존경을 받는 것이다. 다시는 그 암울했던 블랙리스트의 시대가 돌아오지 않아야 한다. 지방에서도 블랙리스트는 엄연하게 존재했다. 우리 사회가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적폐청산의 일환으로 지방문화예술인들에 대한 처우 개선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