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부터 `장부(丈夫)는 자기를 알아주는 자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고 했다. 우리 사회에 `의리`의 표어(標語)로 널리 알려진 말이지만 이를 행동으로 끝까지 보여준 사람은 고래(古來)로 몇 되지 않는다. 이 말은 언뜻 조폭 사회에서 나온 것 같지만 본래 중국 진(晉) 나라 시절에 주군의 복수를 도모하다가 죽은 충신 `예양`(豫讓)이 했다는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자를 위해 죽는다"(士爲知己者死)라는 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조직생활의 보람은 목표의 성취에 있다고 하겠으나 조직인의 향기는 `의리`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의리의 세계에서는 보상이나 직위 또는 여야나 재·퇴직이 크게 중요시 되지 않는다. 또 과거의 신분 상황도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인구에 회자되는 해병의 얘기까지는 할 것도 없이, 한 번 상관은 영원한 상관이며 한번 맺은 우정은 변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　중앙 정부에 재직 중 한창 젊은 과장급 시절에는 `나를 부르는 자에게 간다!`는 자세로 펄펄 뛰듯이 일을 하며 돌아다녔다. 2003년 상반기쯤으로 기억된다. 소속된 부서의 위치 변경 문제를 둘러싸고 관련 부처 간에 심한 영역 쟁탈전이 진행 중이었다. 종국에는 대통령까지 나서 말릴 정도로 몹시 힘 든 상황을 앞두고 부처 내 타부서에서 실무 인력을 영입할 일이 생겼다. 고시 출신 후배들 중 J사무관과 S사무관을 물색해 본인 의사를 물었다. 　그러나 그들은 합류하기를 거절했다. 조직 변환기에 있어 본인의 선택 의사도 중요하므로 그들에게는 재차 손짓하지 않고 없었던 것으로 했다. 당시의 조직 상황으로 볼 때 당사자들의 거부할 만한 입장이 이해는 갔으나 능력을 인정해서 같이 일하자고 했는데도 뿌리친 것이어서 솔직히 서운하기도 했고 스스로 반성도 했다.　`노`(No)라고 의사를 밝힌 본인들도 분명히 마음이 편하지는 아니했을 것이다. 그 기억은 오래토록 가서 공직 퇴직한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 다만 J와 S가 다른 점은, 그 후 J는 10여년이 지나도록 그 때의 거절에 대해 늘 미안한 생각이 있음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피력해 온 반면, S는 기억조차 하지 못했고 그 때의 거절이 본인의 조직생활에 있어 어떤 앙금을 낳는지조차 모르는 듯 했다. 　이와는 반대의 추억으로, 그 후 세월이 흘러 H부 실장급 시절의 일이다. 인사 문제가 발생한 O부 기획조정실장으로 전출(공식적으로는 신규채용)되어 갈 때였다. 이번에는 과장급 중 L과장, P과장 두 명에게 각각 같이 가자고 했다. 둘 다 흔쾌히 따라가겠다고 했다. 그들과 같이 전출을 가서 O부 직원들과 융화도 잘 했고 각자 혁신 업무를 수행하다가 해가 두 번 바뀌어 H부로 함께 돌아왔다. 이들에 대한 기억은 공직 퇴직한 지금도 생각하면 고맙고 유쾌하게 남아 있다.　의리의 조직인은 `자기를 알아주는 자에게 가는 것`이다. 평상시에도 그러하지만 어려울 때 일수록 기꺼이 응해야 한다. 얼마나 급했으면 자기를 찍어 같이 일하자고 했겠는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기본이다. 위 두 사례를 보면 조직이 당시에 면한 상황의 내용은 각각 달랐으나 힘들고 어려운 순간이었다는 점은 같았다. 그런데 앞의 두 사람에 대한 추억과 뒤의 두 사람에 대한 것은 이처럼 다른 것이다. 알아주는 사람이 어려울 때일수록 조건 없이 가는 모습이 아름다운 법이다.　이번에는 필자가 부름을 당한 추억이다. 공직을 퇴직해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던 중 예전에 지방 자치단체에서 인연이 있던 5선 국회의원 J씨가 같이 일하자고 했다. 순간 정무직 출신의 처신을 생각했다. 그리고 직급은 퇴직 당시의 직위에 비해 낮았고 근무 환경은 거의 실무급 수준이었다. 그 다음의 행보도 불투명했다. `알아주는 자에게 간다는 것` 을 실천하기란 쉬운 게 아니구나! 고민하다가 결심하고 국회로 갔다. 정치권에서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많은 것을 배우고 다시 돌아왔다.　나를 부르는 사람에게 가자. 따실 때나 추울 때나 알아주는 자에게 의리를 다하자. 그리고 한 번 주인은 영원한 주인인 것이다. 작금의 세태들이 변화무쌍하다 하겠으나 오늘은 옛 진나라 `예양`의 서릿발 같은 `의리`의 혼 앞에 경의를 표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