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차가 전소된 지 한 달이 지났다. 경찰은 그가 사막에서 구조받은 사실을 확인해 주었지만, 귀국 후 실종이나 자살 여부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그녀는 그를 기다렸고 참새는 후루티를 기다렸금. 그녀는 오늘도 일터에서 컵라면 하나로 점심을 때우고 그와 앉았던 회화나무 벤치를 찾아갔다. 이제는 벌겋게 녹슬어버린 차 지붕 위에 눈에 익은 참새가 앉아있다. 대기는 차갑지만,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다. 　그녀는 생각에 잠긴 채 무릎 위에 앉은 햇살 한 줌을 내려다본다. 손에는 두 권의 책이 들려 있다. 한 권은 성경책, 다른 한 권은 조금 전 도서관에서 빌린 파스칼 키냐르의`세상의 모든 아침`이다. 1991년 출간돼 18만 부나 팔렸고, 작가가 직접 시나리오로 각색한 영화도 대성공을 이루었던 작품이다. 파스칼 키냐르는 프랑스 대학에서 가장 많이 연구되는 현존 작가이다. 한국에는 2013년에 처음 소개되었다가 2017년에 다시 출판된 세상의 모든 아침! 아침이라는 단어는 언제 들어도 상큼했다. 그녀는 제목을 잠시 들여다보다 책 표지를 넘겼다. 조그만 목소리로 첫 문장을 읽는다. 　―1650년 봄, 생트 콜롱브 부인이 죽었다. 생트 콜롱브 씨는 아내의 죽음이 사무쳤다. 　죽음이라는 단어에 마음이 황망해져 얼른 행을 건너뛴다. 　―그는 아내를 무척 사랑했다. 3년이 지났는데도 아내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렸고 5년이 지났는데도 아내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생트 콜롱브 씨는 밤마다 죽은 아내를 만난다. 그가 비올라 다 감바를 연주하면 아내는 그를 보고 활짝 웃었고, 눈물을 흘렸다. 연주를 마치고 고개를 들면 아내는 이미 거기 없었다. 그런데 포도주잔이 비어있었고, 고프레가 반쯤 갉아 먹혀 있었다. 아내는 계속 찾아왔고 생트 콜롱브 씨는 자신이 미친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일었지만 기적이 일어난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내의 사랑이 자신의 사랑보다 훨씬 더 큰 것 같았다. 　그녀는 책장을 훨씬 뒤로 넘겼는데 얼굴이 어두워졌다. `세상의 모든 아침은 다시 오지 않는다`는 문장 때문이었다. 뒤편의 내용(생트 콜롱브 씨의 딸이 사랑을 잃고 고통으로 죽어간다)을 아직 읽지 않았지만, 다시 `오지 않는다`는 문장 하나만으로 크게 상심하고 말았다. 　부정어를 바꿔 읽어본다. 세상의 모든 아침은 `다시 온다` 만약에, 불경스럽게도 만약에, 그를 영영 만날 수 없게 된다면, 책 속의 생트 콜롱브 씨처럼 나도 사랑하는 사람의 혼령을 매일 밤 만날 수 있을까, 내게도 기적이 일어날까…. 　책 속의 생트 콜롱브 씨가 만난 아내가 혼령인지, 환상인지, 현실인지 그녀는 명확히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만난다는 사실만이 중요한 의미였다. 곧 점심시간이 끝나는 알람이 울렸고 그녀는 바삐 일터로 돌아갔다. 벤치에는 그녀가 두고 간 성경책이 놓여있었다. 사람들이 힐끗 쳐다보고 벤치 옆을 지나갔지만 성경책을 가져가는 이는 없었다. 　밤이 되자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다. 오늘 밤도 숲으로 후루티를 마중 나간 참새는 홀로 돌아와서 밤새 짹짹거린다. 그때 한 남자가 다가와 불타버린 차를 바라본다. 잠시 후 남자는 벤치로 와 앉는다. 놀란 참새가 폴짝 날아오른다. 그를 향해 반기듯 지저귀며 성경책을 부리로 톡톡 건드린다. 그가 성경책을 들고 휴대전화 라이트를 비춘다. 순간 그의 눈이 반짝, 빛난다. `전아리 님께. 2007년 12월 25일 이한솔 드립니다` 10년 전 크리스마스 날 그녀에게 선물한 성경책이었다. 책갈피 끈이 솔로몬의 아가 편에 걸려있었다. 그녀가 노란 형광펜으로 밑줄 그어 놓은 구절을 그는 읽고 또 읽었다.　―내가 밤에 침상에서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찾았구나. 찾아도 발견하지 못하였구나. 　그는 그녀를 사랑했지만, 그녀의 존재와 깊이 만나지 않은 자신을 나무랐다. 차가 화염을 터뜨리기 바로 직전에 마음을 바꾸지 않았다면, 한 줌의 재로 생을 마감했을 터였다. 그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발밑을 종종거리던 참새가 흐느끼는 그를 재촉하듯 부산히 날개를 털었다. 조금 후 그는 결심한 듯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달빛이 그의 얼굴을 환히 비추고, 참새 소리가 유난히 소란스러운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