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에 익숙해진 나이　뒤적이는 일이 자주 생긴다　책을 읽어 가다가 지나온 페이지를 뒤적이고　잃어버린 물건 때문에　거듭 동선을 뒤적이고　외출복이 마땅치 않아 옷장을 뒤적인다　바람이 풀잎을 뒤적이는 것을 보다가　햇살이 이파리를 뒤적이는 것을 보다가　지난 사랑을 몰래 뒤적이기도 한다　뒤적인다는 것은　내 안에 너를 깊이 새겼다는 것　어제를 뒤적이는 일이 많은 자는　오늘 울고 있는 사람이다　　새가 공중을 뒤적이며 날고 있다.　 　-이재무　 　벌써12월이다, 올해도 저물어 간다. 언제나 세월은 저만큼 앞서 가고 아쉬움만 남는다. 어디선가 찬바람이 불고 낙엽 진 앙상한 나목들의 포즈가 쓸쓸하다.　가는 세월 앞에 장사가 없다더니, 강한 생명력을 자랑하던 무성한 나뭇잎과 풀잎들도 누렇게 시들었다. 추수가 끝난 들판의 그루터기들도 텅 비어서 마음도 덩달아 웬지 씁쓸하다.　나이가 들수록 기억력이 점점 약해지고 있다. 지난 일을 자주 뒤적이게 된다. 시인의 말처럼 `뒤적이는` 일이 자주 발생 한다. "어제를 뒤적이는 일이 많은 자는/ 오늘 울고 있는 사람이다" 그렇다, 시인의 말처럼 살아 갈수록 기억력이 점점 약해지고 울고 싶은 일들이 많아진다. 　자꾸만 추억이 뒤 돌아 보고 싶어 질 때가 많아진다. 세월 탓, 나이 탓인가. 정신이 깜박깜박하는 일들도 많아진다. 열쇠를 손에 쥐고 열쇠를 찾고 있고, 핸드폰을 승용차 속에 두고 어디 뒀는지를 몰라 온 방안을 뒤적이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큰일이다! 무슨 병의 전조가 아닌가 걱정도 된다. 　그런데 걱정 마시라. 시인은 "바람도 풀잎을 뒤적이고, 햇살도 이파리를 뒤적이고, 새들도 공중을 뒤적이며 날고 있다"고 우리를 위로 한다. 시인의 예리한 통찰력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자연현상에 빗 된, 인간들과의 관계에 대한 은유다. 　`뒤적인다`는 것은 무엇인가? 지난 삶과 지금의 나를 뒤 돌아 보면서 지난 생을 성찰해 본다는 것 아닌가. 어차피 삶은 후회가 본질이다. 시행착오의 연속이 아닌가 "뒤적인다는 것은 내 안에 너를 깊이 새겼다는 것"이다. 　너를 깊이 새겼다는 것은 너와의 아름다웠던, 혹은 슬펐던 추억이 새겨졌다는 것이고, 추억을 먹고 사는 것이 인간이라는 것이다. 세상을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는 시인의 애정이 담겨 있다. 윤동주 시인의 마음처럼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하는" 시각이 바로 시인의 마음이다. 　어제를 뒤적이는 일이 많아져 간다, 그래서 나도 선물 같은 `오늘`이지만 기적 같은 오늘을 다시 뒤적여 본다. 남산 쪽으로 새들이 파란 허공을 물고 어디론가 날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