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 북편 한쪽에 서 있는 감나무 한 그루, 겨울이면 뜰악을 넘보는 북풍을 다소 막아 주기도 하지만, 봄이 되면 그 앙상하던 가지에 어김없이 푸른 새싹이 움트고, 감꽃이 잎사귀 수만큼이나 수도 없이 만개하여 벌새를 불러들이고, 여름 내내 짙은 그늘을 드리워 따가운 햇살을 막아 주기도 한다. 　드디어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다. 감나무는 왜 그렇게 많은 꽃을 피우고 또 그렇게도 많은 열매를 맺는지는 모르지만, 여름 내내 풋감들을 무수히 땅에 떨어뜨린 후에야 마지막으로 붉은 감들을 익게 만드는데, 그래도 최후까지 경쟁을 하며 매달려 있는 감들의 무게가 만만치 않아 때로는 가지가 찢어지는 불상사도 발생한다. 감을 하나라도 더 따먹으려는 욕심에 군데군데 부목까지 받혀주며 가지에서 홍시)가 되도록 기다리고 있었는데, 도둑이 나타났다.　산자락에 걸쳐진 우리 집 주위에는 숲이 짙어, 늘 크고 작은 새들의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나는 그 새들의 지저귐이 듣기 좋아 가끔 뒷마당에 좁쌀을 뿌려 놓기도 하고 때로는 먹다 남은 과일을 내다 놓기도 하는데, 이제 나는 곡식을 좋아하는 새와 과일을 좋아하는 새를 구분할 줄 안다. 어쨌거나 나는 그 새들과는 꽤 친한 편이었는데, 마당의 홍시 감 때문에 새들과의 사이에 그만 심각한 분쟁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요즘은 하루가 멀다 하고 자고 나면 탐스런 홍시 감이 나를 감나무 아래로 부르지만, 도무지 성한 감을 맛보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항상 집 주위를 맴도는 감 좋아하는 새들이 어느새 익은 감을 먼저 알아보고, 모조리 부리로 쪼아놓고 가기 때문에 나는 아침마다 새들이 먹다 남은 과실밖에 먹을 수가 없으니 아니 약이 오를까? 이권 앞에 마음 좋은 사람 별로 없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그동안 수월찮이 먹을 것을 나누며 친해진 놈들인데, 약간의 배신감도 없지 않아, 전전긍긍 하던 끝에 조류방지용 그물을 한 두루말이 사다가 드디어 감나무를 그물로 둘러치는 공사를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변고인가? 아침 식사를 하러 몰려왔던 새들이 난리를 치는 데, 그 우는 소리가 평소와는 전혀 달리 요란하고 날카롭기 그지 없어, 나는 말이 통하지 않아도 이놈들이 강하게 나에게 항의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는 것을 직감으로 느낄 수가 있었던 것이다. 　감나무 주위를 떼를 지어 날아다니고, 내 머리 위까지 날개를 퍼덕이며 `까륵까륵` 짖어대는 소리를 내 나름대로 통역해보면 바로 이런 것이었다. `왜 우리들의 먹이를 빼앗으려 하는가? 우리는 당신의 횡포를 좌시하지 않겠다!` 나는 곧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알게 되었고, 새들과 협상하기로 하였다. 　"그래, 높은 가지의 감은 니들이 쪼아먹고, 내 키가 닿는 낮은 가지의 감은 나도 좀 먹고 살자꾸나" 니들이 아무리 항의해봐야 나는 `갑`이고 니들은 `을`이니, 그나마 높은 가지 감이라도 몇 개 남겨 주는 것에 감사해라 이눔들아. 드디어 공사가 끝났다. 이제 매일 아침 상처 없는 탐스런 감을 먹을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며….　그런데 그 다음날 예상치 못한 천재지변이 발생한다. 갑자기 엄청난 돌풍이 불어, 높은 가지고 낮은 가지고 가릴 것 없이, 감나무 가지가 통째로 찢어지기도 하고, 강풍에 그 탐스럽던 감들이 우수수 떨어져 난장판이 벌어진 것이다. 아! 내 욕심이 하늘의 진노를 사고 말았구나. 어차피 혼자 다 먹지도 못할 감들을 그물로 에워싸느라 그 헛고생을 하다니.... 나는 땅에 떨어져 뭉개진 감을 주워다 먹으며 지금 이글을 쓰고 있다. "그래도 감이 달기는 달구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