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육백여 년 전,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을 역사는 어떻게 기록하고 있을까? 사지(死地)로 끌려들어간 장병들의 목숨을 구하고, 도탄에 빠진 민생을 위한 구국의 결단이었다는 견해도 있고, 한편으로는 단지 역심(逆心)을 품은 이성계의 군사 쿠데타로 보는 시각도 있다. 　어쨌든 역사는 승자의 편에서 씌어 질 수밖에 없는 것이기에, 위화도 회군이 실패했더라면 그는 구족(九族)이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당하는 만고의 역적이 되었겠지만, 그 역성혁명(易姓革命)이 성공했기 때문에 `이성계`는 `조선`이라는 국호를 쓰기로 한 나라의 시조(始祖) 임금이 된다. 그러나 그는 집권기간 내내 정통성 시비에서 자유롭지 못했으며, 고려 충신 정몽주를 철퇴로 죽여 선죽교에 피를 뿌리게 한, `이방원`에게 결국 왕권을 빼앗기게 된다. 하극상(下剋上)이 부른 하극상이었다. 　이조 오백년, 폐륜과 오욕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자식이 아비를 밀어내고, 아비가 자식을 죽이고, 숙부가 조카를 죽이고, 아우가 형을 죽이기도 하고 때로는 형이 아우를 죽이는 등, 골육상잔(骨肉相殘)과 하극상이 일상이 되어 가는 가운데, 조정은 당쟁으로 바람 잘 날이 없으니 백성들의 삶은 도탄에 빠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허약해질 대로 허약해진 조선, 선조 25년(1592년) 임진년(壬辰年)에 현대식 조총으로 무장한 십만 정예 왜군(倭軍)이 현해탄을 건너 반도를 침략하니, 허구한 날 당쟁에만 몰두하던 조선 조정은 불쌍한 백성들은 버려놓은 채 속수무책으로 북으로 북으로 쫓기어 중국 국경까지 몽진(蒙塵)을 거듭하게 된다. 당시 조선에 불세출(不世出)의 명장 `이순신`조차 없었더라면, 아마도 그때 이미 조선은 사라지고 일본에 편입되고 말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데 그런 참상을 당하고도 조선의 정치인들은 정신을 차리기는커녕, 그 후에도 끊임없는 권력암투를 이어가다가 1910년에 끝내 섬나라 일본에게 국권을 유린당하고 마는 치욕의 역사를 기록하게 된다.　그런데 나라의 주권까지 빼앗기게 만든 만고의 역적 간신들은 나라를 찾을 생각은 고사하고, 오히려 일본에 빌붙어 일신의 영달만을 꾀하며 동족을 핍박하였으니, 그 죄를 논하자면 하늘이 진노하고 땅이 떨릴 일인데, 이번에도 외세의 힘에 의해 겨우 독립을 얻은 대한민국 초기 정부는, 그들 반민족 행위자들을 깨끗이 청산하여 나라의 정기를 회복하기는커녕, 그들을 오히려 중용(重用)하여 정권의 기반으로 삼게 된다. 그리고 해방된 지 불과 몇 년도 되지 않아 북쪽의 공산군이 남침전쟁을 일으키자, 친일 전과자들이 이번엔 반공주의자로 변신, 신분세탁을 함으로써 전후(戰後)에도 계속 그들의 기득권을 유지할 발판을 마련하게 되었던 것이다. 　아무튼, 상당 수 일제 앞잡이들을 정권안보의 행동대원으로 삼은 초대 정부는 4.19 학생혁명으로 기어이 무너졌고, 드디어 민주국가다운 국가가 세위지려나 기대하는 순간, 포신을 북쪽으로 두고 있어야 할 일단의 군인들이 포신을 남쪽으로 하고 한강 다리를 건너오게 된다. 바로 5·16 군사 쿠데타였던 것이다. 여기까지가 내가 알고 있는 우리나라의 근대사인데, 물론 역사에 대한 다른 견해도 있을 수는 있을 것이다. 　한강을 도강한 박정희와 위화도 회군을 단행한 이성계는 시간적으로 수 백 년 이상의 간극이 존재하지만, 두 개의 쿠데타가 모두 성공한 쿠데타란 점이 같고, 정통성시비 면에서도 닮은 점이 없지 않아 보인다. 어쨌든 역사는 승자의 편에서 기록하려 하지만, 이조 오백년의 오욕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이제라도 역사는 기록자의 주관이 아닌 객관적 진실에 근거하여야 한다는 것이 변함없는 내 생각이다.　여자가 강간을 당하여 예쁜 아기를 낳았다면, 잘 생긴 아이를 가지게 해 주었으니 강간당함을 은총으로 여기라 할 수 있을는지 모르겠고, 강간을 범죄가 아니라 말 할 수는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