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는 수많은 고진(古鎭)들이 남아있지만 그 가운데 가장 대중적으로 인기를 끄는 고진은 역시 윈난성의 리장고성(麗江古城)이다. 물론 윈난성이 중국의 가장 이색적인 관광지역이라는 점이 작용하기도 했지만 리장고성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도시여서 연간 수많은 여행자들을 불러들인다. 명·청시대의 전통가옥은 물론이고 당시 형성됐던 도시의 윤곽이 그대로 보존돼 이곳을 찾는 이들은 최소한 100년 이전의 중국 모습을 생생하게 목도할 수 있다.　리장에 가면 골목골목 수많은 인파가 몰려 평화롭고 고즈넉한 산책이 불가능하다. 과거에는 주로 외국인 여행자들이 찾았지만 최근 들어 중국인들의 경제적 사정이 나아지면서 중국 내에서도 특이한 리장을 찾는 내국인들 때문에 발 디딜 틈이 없다. 시끄럽고 지저분하며 무질서로 뒤범벅이 돼 있다. 그래서 여행자들은 리장고성보다 비교적 한적한 인근의 수허(束河)고진으로 발길을 돌린다. 리장보다 규모가 작고 전통가옥들이 더 생생하게 보존된 수허고진은 리장에서 자동차로 약 15분 정도 걸린다.　그러나 수허도 이미 만원이 돼 버렸다. 리장과 다를 바가 없이 국내외 여행자들로 꽉 들어차 밤새 시끄럽다. 이제 고요하고 아름다운 고진을 찾으려는 외국인 여행자들은 중국인들이 골목과 상점, 식당을 점령해 도저히 참을 수 없을 정도의 높은 목소리로 떠들어 대고 아무 곳에나 쓰레기를 버리는 모습을 보고 발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독일의 고성이나 동유럽의 그림 같은 성곽도시들을 여행하던 기억으로는 도저히 용납이 안 되는 것이다. 하기야 유럽의 고요하던 도시에도 중국인들이 진출해 버렸으니 지구상에 더 이상 고요한 관광도시는 없어져 버렸다.　리장과 수허는 당초 전통가옥과 반질반질한 돌로 이뤄진 골목길, 그리고 거기에서 살아가는 소수민족의 모습으로 충분한 문화적 매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그 모습은 어느 날부터 여행자들을 위한 식당과 상점, 카페로 바뀌었다. 비교적 규모가 큰 가정집은 리모델링을 통해 호텔로 변신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고성 안에 온갖 잡다한 시설들이 빼곡하게 들어찼다. 심지어 여강고성의 실개천변에는 약 50미터 정도 나이트클럽이 들어서 밤새 고성방가와 취객들의 추태가 이어진다. 이런 모습은 수허도 예외가 아니다.　물론 여강과 수허에서 살아가는 주민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관광 활성화가 그네들의 삶을 윤택하게 해 준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수백년 소외감과 쪼들림에 시달렸던 소수민족들이 어느 날 조성들이 물려준 문화적 자산으로 돈벌이가 되고 생활의 주름이 펴지니 누가 이 현상을 거부하겠는가.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들이 온전히 혜택을 보는 것도 아니다. 돈 많은 중국인들은 주민들에게 집을 사들였고 거기에 권력가들과 결탁해 세계문화유산에는 들어설 수 없는 시설물들을 세우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전통 한옥마을인 전주의 경우는 어떤가. 그곳에서 과연 우리의 전통문화를 느긋하게 즐길 수 있겠는가. 이미 모든 한옥은 주민의 거주가 아니라 업소로 변했고 한복을 입은 여행자들이 골목을 비좁게 만들어버렸다. 전주시의 입장에서는 관광수입이 엄청나게 올라오니 쾌재를 부를만한 현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을 찾았던 수많은 여행자들은 `다시는 방문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동전의 양면 같은 일이다.　경주의 황남동 한옥마을이 변해가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하더라도 이곳을 찾는 여행자들의 발길은 셀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 `황리단길`이라는 낯선 이름의 거리에 여행자들의 편의시설이 속속 들어서면서 이 지역은 일약 경주의 핫플레이스로 떠올랐다. 그리고 하나 둘 서민들이 살아가던 가정집들이 숙박업소로, 식당으로, 카페로 변신하고 있다. 당연히 여행자들의 편의를 위해 그런 것들은 필요하다. 그러나 과유불급이라는 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경주의 황남동 한옥마을이 중국의 리장고성이나 수허고진, 전주 한옥마을처럼 북적거리는 곳이 된다면 한편으로는 반가운 일이다. 충분한 콘텐츠를 갖추고도 대표 관광도시로서의 명성을 쉽게 얻지 못했던 경주로서는 이보다 더 반가운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하지만 이러다가 고유의 아름다움이 사라지고 어느 번다한 대중 관광지로 변해버린다면 얼마나 아쉽겠는가.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개발과 보존을 병행해야할 기로에 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