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나 지금이나 사생활뿐만 아니라 공적인 조직생활에 있어서도 성냄은 불(火)과 같아서 그 동안 인간적으로 가꿔 온 `공덕의 숲을 다 태워버린다`(燒盡功德林). 경험으로도 버럭 화를 내서 얻는 것은 거의 없고 잃는 것만 많을 뿐이다. 갑(甲)·을(乙)의 관계에서도 어느 쪽이든 화냄은 마찬가지이다.　정부의 종합 조정기관에서 과장급으로 재직하던 시절에 성품이 유별난 상급자를 2년 넘게 모시고 일 한 적이 있다. 업무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고 아이디어가 많은 반면에 자기중심적인 성향이 강한 분이었다. 아침회의 때는 과장별로 많게는 열 가지 정도씩 정책 지시 사항이 떨어지기가 일쑤였다. 잔소리가 심할 뿐만 아니라 부하들을 쥐어짜는 스타일이었으며 종종 일요일에도 회의 소집을 하곤 했다. 새해 첫날 공휴일에도 신년도 정책 구상을 해보자며 외부 집합을 시도했던 적도 있었다. 　이렇듯 업무 부과 방식도 과도했지만 실로 문제는 불같이 급한 성질과 독설에 있었다. 부하들에 대한 화가 치밀 때면 "직권면직 시켜버리겠다!", "×소리하고 있네!", "개××!" 정도는 입에 붙어 다녔으며, "당신 ××리에는 ×이 들었나?" 등 인격 모독적인 언사도 서슴지 않았다. 그래서 대부분의 직원들이 기피하며 악평할 수밖에 없는 일종의 변사또형 상사 스타일이었다. 어떤 면에서는 비굴하고 측은하게까지 보이는 때도 있었다. 　휘하 국장급 중에는 그 상급자 방에 개별적으로는 아예 들어가기조차 하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직원 중에는 저 양반 밑에서는 정신 수양하는 자세로 일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한다고 말하던 사람도 있었다. 　그 상급자 본인의 동기를 들어보면 스스로는 분명히 진실했다. "내 부하 직원들을 어디에 내놔도 최고가 되는 강군으로 육성하기 위한 것이다" "내가 여러분들을 유격훈련 시키는 중이다" 등으로 말하곤 했다. 본인은 진심으로 충실하고자 했다 하나 부하들이 진심으로 수용하지를 못했다. 이 점에서 어떤 독선의 파라독스가 도사리고 있었지 않았나 생각되기도 한다. 　그 상급자 모시고 일 한 그 기간 중에 거의 혹독한 기획훈련을 받았음에는 틀림없다. 직권면직 당하지 않으려고 정보화 관련 자격증도 하나씩 땄다. 그 2년여 동안은 정책·기획 보고서 작성 훈련은 확실히 했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든 지금에 와서 과거의 상급자를 평가하고자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조직인으로서의 성질과 화를 반성하고자 하는 것이다.　`호통` 치던 상사가 그리운 법이지만 `화`내는 상사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호통과 화냄의 차이는 무엇인가? 분명한 것은 양자의 외형은 비슷하나 내면은 달라 보인다. 전자는 심중에 불이 없으나 후자는 심중에 불이 타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호통이 화로 전달되는 경우도 많다는 데 있다. 호통도 함부로 칠 일은 아닌 것이다. 또한 본인은 호통 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이른바 `존경면허`(respect license)의 착각도 주의해야 한다. 당하는 자는 쉽게 상처를 입기 때문이다.　지방 조직에 있을 때는 1년여 기간에 한 번도 화는커녕 호통도 친 적이 없다. 그 후 중앙부처 2-3년간은 공직생활의 전투적 상황 하에서 종종 호통을 치기도 했고 화를 동반한 적도 있다. 이를 반성하고 있다. 아무리 급박하고 힘든 상황에서도 화냄은 인간적인 반발을 배태시키고 성과 측면에서조차 결코 효과적이지 못하다. 　과거의 그 상급자는 가는 곳마다 그렇게 인적·물적으로 강한 드라이브를 걸어서 일반인들도 들으면 대부분 알 수 있을 정도의 상당히 가시적인 정책성과를 달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 그의 부하 직원들 중 극소수도 그를 호평해주거나 그리워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놈의 성질 때문이다.　호통도 문제이다. 호통에서 중요한 것은 화(火)를 빼는 것이다. 쉽지 않는 일임이 분명하나 화가 제거되지 않은 호통은 절대 하면 아니 된다. 지금에 그 상급자 시절의 추억을 회상하면 그리움보다 희미하게 씁쓸한 기억이 더 많다. 칭찬으로 얻은 부하 화냄으로 잃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