씻은 듯이,　이 얼마나 간절한 말인가　　누이가 개울물에 무 밑동을 씻듯　봄날 천방 둑에 옥양목을 빨아 널 듯　　혹은 밤새 열에 들뜨던 아이가　날이 밝자　언제 그랬냐는 듯　부르튼 입술로 어머니를 부르듯　　아, 씻은 듯이　얼마나 가고 싶은 곳인가　 - 이상국　 　처서가 지나고 9월이 왔다. 아침저녁으로 날씨가 쌀쌀해졌다. 텃밭의 토마토와 오이 참외 옥수수들의 잎들이 시들기 시작한다. 그래도 고추잎과 파초잎들은 아직 잎이 시퍼렇다. 　대추 열매가 푸르렁 푸르렁 열리고 해가 조금씩 빨리 지기 시작한다. 밤과 새벽녘엔 가을의 전령인 귀뚜라미 소리가 가을을 재촉하고 벌써 너무 일찍 추워지면 어쩌나 하는 마음도 있다. 가혹했던 금년 여름도 이젠 굿 바이! `씻은 듯` 지나가고 있다. 방울을 굴리는 듯한 풀벌레들의 투명한 울음소리를 들으면 가을밤에 `씻은 듯` 두 귀가 맑아진다. `씻은 듯` 참 좋은 말이다.　요즘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너무 정신없이 쫓긴다. 그래서 `백수들도 과로사` 할 지경이라고 농담들 한다. 숨막히게 흘러가는 잡탕 같은 마음들, 헝클어져 있다. 길을 걷다가 한번쯤 멈춰 서서 가을 하늘을 보며 먼지 낀 마음들 가만히 털어내야 한다. 때 묻은 마음들을 씻어내야 한다.　첫 연에서 시인은 "씻은 듯이/이 얼마나 간절한 말인가"라는 깨달음의 진술을 하고 있다. 얼마나 때 묻은 삶이 길래 `씻은 듯`이란 말이 그토록 간절했을까. 일상을 사는 우리들에게 헝클어진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시 구절이다. 　둘째 연부터는 참신한 비유가 개성적이다. "누이가 개울물에 무 밑동을 씻듯" "봄 날 천방 둑에 옥양목을 빨아 널 듯" (옥양목은 생목보다 발이 고운 무명으로 빛이 희고 얇은 베다) 씻은 듯한 마음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옥양목 베올과 귀뚜리 울음소리를 접목 시켜서 연결한 구절은 가을의 이미지로 아름답다. 　셋째 연에서는 "밤새 열에 들뜨던 아이가/ 날이 밝자/ 언제 그랬나는 듯/ 부르튼 입술로 어머니를 부르듯" "씻은 듯이 /가고 싶은 곳"으로, 시를 더욱 간절한 곳(장소)으로 상상력을 확산 시키고 있다. 간밤에 부르튼 입술로 어머니를 부르던 아이의 목소리가 아침엔 씻은 듯 낳은 것을 볼 때의 기쁜 마음! 상상해 보시라. 얼마나 다행인가. 이 시의 울림을 주는 부분이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씻은 듯한 맑은 영혼을! 원한다, 가을 하늘처럼 투명한 마음을. 이제 그토록 혹독했던 2017년 여름을 저 멀리 던져 버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