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갇힌 곳은 오스트레일리아 그레이트샌디 사막 북쪽 100㎞ 지점이었다. 그는 교만했고 비겁했고 방심했다고 자책했다. 사막은 마을 농장에서 가깝게 보여 모험을 감행하기에 유혹적이었다. 물과 비상식량마저 떨어진지 사흘이었다. 적도 바다의 무풍지대처럼 바람은 구름 속에 숨어있었고 태양열이 지표를 뜨겁게 달구었다. 　그는 사막온도가 주기적으로 섭씨 45도를 넘나든다는 것을 알아, 북아프리카의 베두인족처럼 옷을 여러 겹 껴입었고, 길고 헐렁한 검은 천을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둘러쌌다. 체온이 41도까지 오르면 열사병, 42도를 넘으면 사망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약 300만 개의 땀샘이 땀을 증발시켜 체온을 내리고 있었지만 이제 그에게 탈수가 시작되었다. 시간 당 최대 3ℓ의 물을 땀으로 배출한다면 믿겠는가. 　그는 나무가 보이는 사구 쪽으로 비틀거리며 걸어갔다. 무엇인지 모르는 푸른 잎사귀와 빨간 꽃잎을 따먹었다. 사막을 빠져나가려는 희망 같은 것은 애당초 없었다. 어차피 생을 벗어나고픈 욕망으로 떠나왔기에 기꺼이 나그네의 최후를 조용히 끝낼 작정이었다. 그는 심한 어지럼증을 느꼈다. 수분이 5% 정도 빠져나간 것이다. 10% 탈수하면 정신착란이 온다. 　그는 물통 속에 오줌을 누어 마시고는 중얼거렸다. 아열대무풍대 지역(horse latitude)에서 선원들이 말을 잡아먹었다지만, 극한 상황에서 제 오줌을 먹고 제 살을 뜯어 먹을 지경이라면 밧줄을 목에 거는 편이 옳아. 하지만 생명이 다할 때까지 이 지겨운 생을 저주하며 버티리라. 　그는 구덩이를 파기 시작했다. 문득 멈춰서 손가락으로 혀를 만져봤다. 15% 탈수되면 혀가 붓는데 아직은 괜찮았다. 피부가 쪼그라들고 뼈에 금이 가고 움푹하게 꺼진 눈으로 죽어있는 자신… 그는 뼈만 남은 사체를 상상하며 부르르 떨었다. 자신이 들어갈 정도의 구덩이를 팠을 때 주홍빛으로 물든 모래폭풍이 자욱하게 불어왔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나팔꽃처럼 활짝 핀 거대한 모루 구름의 환영이 보였다. 　구름 밑에서 세력을 키우는 뇌우야, 내 정수리를 쪼개고 이 모래언덕을 흩어버려라. 종주먹을 들이대듯 울부짖던 그가 문득 정색하고 물었다. 정겨운 고국을 왜 떠나왔던가? 사실은 도망치고 싶었다. 왜? 사업은 계속 실패를 거듭했고 능력자만 살아남는 세상에서 무능한 자신이 발붙일 곳이 없었다. 자신의 존재는 시래기처럼 말라 바스락거렸고 미래는 막막했다. 　세계는 아귀다툼하고 탐욕스러운 인간은 태고 이래로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열강의 틈바구니에 끼어 짓밟혀온 역사가 또 되풀이하려고 움을 튼다. 늘 전쟁의 참상이 눈앞에 떠올라 어느 한순간도 행복한 적이 없었다. 자신의 존재가 하찮은 개미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왜 살아야 하는지, 신의 뜻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살아가는 일이 끔찍했고, 세상과 단절하고 싶었다. 결국, 생의 허무에 굴복하고 남은 돈을 털어 사막으로 떠나왔다. 　구조된 미국인 로버트 보구키가 사막에 갔던 이유는 사막에 앉아 명상에 잠기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그 이유에 실소를 머금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자신도 그와 다를 것이 없었다. 그도 사막을 꿈꾸었다. 사막에 가면 생존과 죽음에 대한 불가사의한 의문이 풀릴 듯했다. 극한의 혹독한 세계에 자신을 몰아넣음으로써 오히려 살아갈 힘을 얻으려는 무의식의 발로였는지 모른다. 　이곳은 바람이 한 방향으로 일정하게 불 때 형성되는 깊은 띠 모양의 `선사구(linear dune)`였는데, 바위가 부서져 내리는 듯한 대포 소리가 들려왔다. 독일의 탐험가 우베게오르게가 사하라 사막에서 들었다던, 돌이 수천 개 조각으로 떨어져 내리는 소리였다. 　곧 먼 곳에서 북소리가 들렸고, 이어 총소리, 베이스 소리가 들려왔다. 그런 소리는 사하라나 중동, 남아프리카, 칠레, 캘리포니아 등지의 사막에서 형성되는 `쿵쿵거리는 사구(boom dune)`에서나 들을 수 있는 소리였다. 무슨 소리지? 그는 구덩이 밖으로 나갔다. 　이번에는 파이프 오르간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눈을 감고 오르간 소리에 섞여 들려오는 노랫소리에 집중했다. 수정 같은 생명수를 마시게 하옵시며 불기둥과 구름 기둥으로 나를 인도하소서. 여행을 떠나기 전 마지막 예배에서 불렀던 찬송가였다. 그는 도망치고 싶었던 자신의 고국이 사무치게 그립다고 울부짖으며 기도했다. 사구 너머에서 저공 비행기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