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하나의 목숨으로 태어나 바다에 누워.해 저문 노을을 바라본다 설익은 햇살이 따라오고 젖빛 젖은 파도는눈물인들, 씻기워간다….　여름철이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흥겨운 노래 `바다에 누워`는 1985년 대학가요제 대상 수상곡이다. 가사는 그보다 11년 전에 박해수 시인에게 제1회 한국문학 신인상을 안긴 시다. 　박해수 시인은 내가 검정교복에 까까머리 중학생이던 시절 문예반 선생이자 국어선생님으로 만난 분이다. 선생님 덕분에 우리들에게는 시인이 국어책 속에나 있는 먼 존재가 아니었다. 그 시절 우리들은 통기타 열풍처럼 문학열병을 앓으며 푸르디푸른 시간을 보냈다. 　선생님처럼 창밖을 바라보며 그윽한 눈빛으로 시를 썼고, 가방에는 언제나 시집 한 권쯤 넣어 다니며 읽을 줄도 알았다.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같은 중요한 시험을 코앞에 두고도 백일장에 참가하는 일이 우선이었다. 백일장에 가보면 시인들로 즐비했고, 때로는 김동리 선생님처럼 전설 같은 분들의 얼굴도 뵐 수 있었다. 지금처럼 휴대폰이 없었으니 인증사진 한 장 남겨놓지 못한 아쉬움이 크지만, 사진보다 더 또렷한 기억으로 아스라이 남아 있다.　그때 문예반으로 함께 모이던 아이들은 지금 전국 각지에서 시인으로, 소설가로, 아니면 다른 일을 하면서도 시를 잊지 않고 살고 있으니, 선생님이 우리에게 준 가장 큰 선물임에 틀림없다.　최근 인터넷 검색어는 물론 학원가에서도 `요점정리 인문학`이라는 강의가 제법 인기몰이라고 한다. 인문학에 대한 관심과 열풍이 사회적 현상으로 자리 잡으면서 취업이나 진학에 도움이 되는 `인스턴트 인문학`이 대세를 형성하는 모양이다. 허나 앞뒤가 잘려나간 토막 상식 같은 몇 문장만으로 한 작품을 어찌 속속들이 느끼고 이해할 수 있을까. 　자판기에서 뽑은 종이컵 커피처럼 달달한 몇 문장으로 생활기록부의 독서란을 메울 수 있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어쩌면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이끌어갈 젊은 날의 책읽기가 그리 손쉬워서는 안 된다. 뿐만 아니라 `인스턴트 감성`으로 아름다운 청춘의 푸른 날들을 어찌 다 노래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 무엇에 얹힌 듯 가슴이 답답해진다.　그래서 떠올려보는 질문이 `요즘 학생들도 과연 시를 읽고 쓸까?`이다. 행여 시를 대하는 일이 한량들의 한가로운 일인 양 치부되거나, 무거운 스펙을 위한 장식품으로 폄훼되는 건 아닐까?　아니다. 단언컨대 시대를 불문하고 시를 읽고 시를 쓰는 일은 인생 그 자체이고, 희망 그 본질이다. 실용적으로도 유익하다. 학업과 일상에 지친 마음을 달래고 위로해 주는 영양가 만점의 보약이다. 　다시 여름을 맞는다. 방학과 휴가를 맞아 모두들 산과 바다로 떠날 계획에 벌써 마음이 설레는 계절이다. 바라기는 그 여행가방 한쪽에다 시집 한 권을 넣어가자. 끝없이 펼쳐진 바다가 바라보이는 솔숲 그늘이거나, 계곡 물소리가 들리는 산그늘이거나, 어디서라도 손때 묻은 시집을 펼쳐 보라. 여유와 멋스러움도 좋거니와 시에 담긴 시인의 마음을 비로소 공감할 수도 있으리라. 무릎을 치면서 감탄할지 모른다. 아, 이 말이 그 말이었구나! 　혹 시집을 읽다 그런 순간에 이르면 시 한 구절을 따다 가까운 벗들에게 문자로 선물해볼 수도 있지 싶다. 짜증스런 무더위 속에 만난 한 줄기 소나기처럼 누군가의 일상에 시원한 바람처럼 불어줄지도 모를 일이다. 여행지에서 노래방에라도 들르면 `바다에 누워`를 큰소리로 부르고 싶다. 지난 해 겨울 갑작스런 부음을 남기고 바다가 되어버린 스승을 그렇게라도 추억하고 싶은 여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