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의 미래와 역사의 진정성

제 2차 세계대전은 지금으로부터 불과 70 여년 전 쯤의 전쟁사다. 유사 이후라고해도 과거 역사의 기록과 달리, 2차 대전 당시에는 수많은 종군기자들이 무비 카메라까지 들고 생생한 영상으로 현장을 기록 보존한 최근의 인류사이다. 　그 이후 세계 각국에서 제2차 대전사를 바탕으로 한, 수 백편 이상에 달하는 전쟁영화가 또 만들어졌다. 특히 미국에서는 2차 세계대전을 소재로 한 많은 수의 블록버스트급 영화들이 흥행(興行)에 성공하여 헐리우드를 살찌운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문제는 흥행에 성공한 그 영화들이 비록 실화(實話)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는 하지만, 반드시 진정성이 담보되는 역사의 진실은 아니라는 것이다. 즉, 제작자는 관객에게 감동과 재미를 주기위해 스토리를 각색하고 장면 과장도 서슴치 않는다. 어디 영화뿐이겠는가? 우리가 즐겨보는 대다수의 소설이 모두 픽션이지만, 역사적 배경을 다룬 소설이라고 할지라도 소설을 두고 진정성 시비가 일어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런데 신라는 무려 천 수백년 이 땅에 존재했던 고대국가였다. 우리글도 아닌 순수한 중국글로 씌어 진 단 몇 줄인가의 희미한 기록이 남아 있을 뿐이다. 신라왕궁은 그 흔적조차 찾기가 어려운 가운데, 극히 단편적인 건축물의 부재 조각이나 당시 사람들이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녹슨 장신구 등의 출토 유물에 의해 퍼즐을 ㅤ맞추어야 하는 역사이고 보면, 애시당초 진정성에 입각한 유적복원이란 꿈과 같은 이야기일 것이다.　따라서 나는 고고학이나 역사학이라는 학술활동과는 별개로, 다만 신라의 스토리텔링을 배경으로 하는 엔터테인먼트 관광콘텐츠를 만들어 `흥행 경주`에 치중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을 한다. 또 이를 실행에 옮겨보았던 것이다. 하지만 정작 이야기의 무대가 되는 서라벌 1360방 디지털 복원은 시작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다만 기술적 구현 가능성을 확인하는 시범사업이라 할 수 있는 신라왕궁과 황룡사 복원영상 제작과정에서부터 고증이라는 진정성 시비에 휘말렸다. 영상 제작자의 의도는 아예 비집고 들어갈 틈조차 보이지 않고, 사학계나 문화재관련 기관의 간섭과 지휘에 의해 장르가 불분명한 기형적 작품이 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게 사실이다.　역사(歷史)는 보지 못한 과거이며 사실에 기초한 픽션일 뿐이다. 더구나 수 십년이 걸리고, 수 조원의 예산이 소요되는 실물복원이 아닌, 영상복원작업에서조차 소품 하나 장신구 하나까지 고증을 거치고 진정성을 담보하라고 한다면, 작가는 그의 상상을 멈출 수밖에 없다.　따라서 경주에서는 두 번 다시 유적 복원이든, 영상 재현이든, 소설이든 신라문화의 부활을 꿈꾸는 자가 있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신라의 역사는 수 십년 전의 기록이 아니며, 무려 천 수백년 전의 구전(口傳)을 기록한 것이다. 즉, 현재 우리가 신라역사의 교과서로 삼고 있는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조차도 당시의 기록은 아니며, 신라 이후 고려조에 이르러 여러 가지 구전을 집대성하고 정리한 기록인 것이다　현재 많은 사람들이 신라유적으로 오인하고 있는 불국사 역시, 그 가람터는 비록 옛 신라로 거슬러 갈 수 있을지 몰라도, 조선시대에 중건된 사찰이 분명하다. 그래서 신라역사를 소재로 한 영상물은 이 시대에 들어 신라를 재조명 하고 가시화하여 경주를 유서깊은 스토리텔링의 주인공으로 만들자는 의도였다는 점을 밝힌다.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하고, 수 십년을 가다린 후에 경주가 어떻게 달라질는지 모르지만, 현재가 없는 미래는 무엇이며, 어떤 음식이 나올지도 모르는 생일날의 만찬을 위해 3일을 굶겠나? 지금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할 것이며, 현재를 윤택하게 하면 굳이 미래는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현재가 쌓여 역사가 되기도 하지만, 현재가 곧 미래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