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를 읽다보면 궁금한 일도, 궁금한 곳도 참 많다. 삼국유사는 읽을 때 마다 새롭다. 알지 못 할 이야기 투성이지만 뜻밖의 진실과 마주치는 즐거움도 있다. 삼국유사에는 신라시대 역사적이고 복잡한 사건들이 단 한 줄, 또는 단 몇 줄로 은유적으로 혹은 상징적으로 처리되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흥미있는 왕 중의 한 분이 제48대 경문왕이다. 그리고 궁금한 절은 `도림사(道林寺)`다. 그 유명한 절, `도림사`는 경주의 어디에 있었을까? 삼국유사에 보면 `도림사는 옛날에 입도림(入都林)곁에 있었다`라고 되어 있다. 도성(都城) 즉 경주로 들어서는 길목에 자리 잡은 절이라는 것이다.　`도림사지`는 오늘 날 황룡사지와는 산업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포항 가는 길 오른쪽) `구황동 모전석탑지` 자리였을 것으로 추정 하고 있다. 1930년경 일본인 오사카 긴타로가 이 곳에서 `도림(道林)`이라고 새겨진 기와 조각을 주운 사실도 있다고 전해진다. (현재 `구황동 모전 석탑지` 절터 부근엔 `농업기술 연구소`가 들어서 있다)　48대 경문왕 때의 이야기다. 왕의 귀가 갑자기 당나귀 귀처럼 길어졌다. 왕 즉위 직후에 일어난 변화다. 이 이야기는 무슨 뜻인가? 이 이상한 이야기에 대해 삼국유사는 이렇게 적고 있다. 　즉위하자 왕의 귀가 갑자기 당나귀 귀처럼 자랐다. 왕후와 궁인들은 모두 알지 못했다. 복두장이 한사람만이 이를 알았다. 하지만 평생 남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가 장차 죽으려 할 때 `도림사`대숲 속 아무도 없는 곳에 들어가 대나무를 향해 외쳐 말했다.　`우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같다` 그 후 바람이 불면 대나무가 `우리 임금님 귀는 당나귀귀 같다`고 소리 냈다. 왕이 이를 미워하여, 대나무를 베어 버리고 산수유를 심었다. 그러자 바람이 불면 다만 `우리 임금님 귀가 길다`고 소리를 냈다. 　-삼국유사　　경문왕(김응렴)은 운 좋게 왕이 된 사람이다. `청렴코드`로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왕이 된 그가, 막상 왕이 되고 보니 기대했던 만큼의 왕의 그릇이 아니었다는 의미로도 `당나귀 귀` 설화는 읽힐 수도 있다.　왕이 무능력한 사람이라는 소문이 퍼지게 되면 난감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이 치명적인 소문은 복두장이의 입을 통해 퍼지고, `도림사` 대숲에서 나는 소리는 도림사의 승려들이 퍼뜨린 소문의 상징일 것이다. 대나무는 직언을 상징한다. 왕은 이 상황을 타개키 위해 대나무를 베어 버린 게 아닐까? 즉, 설화속의 `당나귀 귀`는 왕의 감춰진 진실, 불편한 진실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대나무 대신 심은 나무가 왜 산수유였을까? (경주에는 도심에 산수유나무가 많다!)　며칠 전 나는 옛 `도림사터`를 찾아서, 보문입구 `숲머리 마을`의 `농업기술연구소`가 있는 논밭 곁, 폐사지 `구황동 모전 석탑지`에 갔다. 지금은 대숲의 흔적도, 산수유 나무 한그루도, 그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다만 부서진 커다란 석탑의 부재들과 통일 신라 시대의 우수한 조각 기법이 보이는 한 쌍의 `인왕상` 만이 마른 풀 속에 쓸쓸하게 뒹굴며 절터를 지키고 있었다. (이곳에 있던 한 쌍의 우수한 기법의 `인왕상`은 현재 경주 국립 박물관 미술관 앞에 옮겨져 있다)　경문왕은 재위 기간 중 세 차례의 모반을 진압했다. 불교의 세력 결집을 통해 국권을 안정시킨 큰 임금 이었다. 하지만 3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아깝게 세상을 떴다. 봄이 오는 경주의 길목에 화사한 봄꽃들 잔치가 한창이다. 나는 알 듯 모를 듯한, 흥미로운 경문왕 얘기를 떠 올리며 숲머리 마을 `농업기술 연구소` 돌담을 천천히 돌아서 나온다. 저 멀리 선도산에 금관 빛 경주의 노을이 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