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음식 준비를 한다고 해도 요즘에는 강정이나 엿 같은 건 만들어진 것을 사고, 흰떡도 방앗간에서 기계로 썬 것을 가져오니 옛날보다는 많이 편리해진 날들이다. 게다가 제수 음식조차 가격에 따라 패키지로 된 것을 전화로 주문만 하면 문 앞까지 배달해 주는 업체가 성업중이라 하니 과거에 비해 명절 준비가 훨씬 수월해 진 것은 사실이다.
　

내가 어릴 때는 설이 다가오면 방앗간에서 김이 무럭무럭 나는 흰 가래떡을 어머니가 뽑아오고, 굳기 전에 말랑하고 따뜻한 떡을 가위로 뚝뚝 잘라서 달콤한 조청을 발라 먹던 맛은 잊혀지지 않는다. 가래떡이 적당히 굳으면 떡국을 끓이기 위해서 낮 동안의 일을 마치고 흐릿한 백열전등빛 아래에 식구들이 손을 보태어 납작납작하게 썰어야했다. 나무 도마 위에 똑, 똑, 떡 써는 소리가 리드미컬하게 들리고 썰고 난 떡가래의 끄트머리가 나오면 얼른 집어 먹곤 했다.
　

강정을 만드는 것도 그랬다. 설이 가까워 오면 뻥튀기를 해 주는 아저씨가 와서 동네 가운데 마당에 뻥튀기 기계를 설치해 놓으면 집집마다 쌀, 보리, 콩, 땅콩 같은 것들을 가져와서 튀겨갔다. 빵빵하게 된 곡물이 터지기 직전이면 늘 아저씨는 "뻥이야!"하고 소리를 치면 둘레에 진을 치고 있던 아이들은 두 손으로 귀를 막으면서도 '뻥!' 소리와 함께 주변으로 흩어지는 알갱이들을 서로 주워먹으려고 경쟁했다.
　

그렇게 튀긴 것을 엿과 버무린 후 넓고 편편한 판 위에다 넓게 펼쳐놓고 적당한 크기가 되도록 칼로 썰어서 식힌다. 그 소리들, 냄새들, 온기들. 그러고 보면 추억은 맛이나 소리, 냄새, 따스함 같은 감각들이 서로 어우러져서 하나의 그림이 되는 교향악인가 보다.
　

지금도 사람들에게 많이 사랑받고 있는 시인 백석(白石)의 시에는 맛있는 음식들이 풍기는 냄새와 맛이 가득하다. 아리아드네의 실꾸리가 테세우스를 미궁으로부터 불러내는 길잡이가 되듯, 백석의 시에서 냄새는 그를 아련한 과거로 데려 가는 길잡이가 된다.
　

시 '여우난골 족(族)'에는 그가 어린 시절 명절에 먹던 음식들이 냄새를 풍긴다. '인절미, 송구떡, 콩가루차떡, 두부, 콩나물, 볶은 잔디, 고사리, 도야지비계, 무이징게국'의 내음새가 명절날 그와 사촌들이 제비손이 쥐손이하며 놀던 진할머니 집으로 그를 이끈다.
　

일가친척들이 욱적하니 모여서 흥성이는데, 시누이 동세들이 만드는 음식 냄새에 잠이 깨는 북방의 명절 아침이 눈에 잡힐 듯 선명하게 그려진다.

나를 옛 기억의 어느 날로 데리고 가는 백석의 시 구절이 있다. '주막(酒幕)'이라는 시에서 '호박잎에 싸오는 붕어곰은 언제나 맛있었다'라는 구절. 백석 시의 붕어곰이 어떤 음식인지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호박잎에 싸오는'이라고 했으니 내가 생각하는 그 음식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이제는 더 이상 맛 볼 수 없는 어머니의 맛 중에서 지금도 간절히 먹고 싶은 것이 있다. 가을에 붕어와 무를 졸인 찜인데 백석 시의 '붕어곰'이 비슷하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가을이면 흔하던 값싸고 달디 단 가을 무를 손바닥만하게 큼직큼직 자르고 며칠간을 물에 담아두어 해감이 잘 된 씨알 굵은 붕어를 비늘 치고 속을 꺼내어 통째로 무 위에 얹은 뒤 묵은 간장으로 간을 맞추어서 무가 뭉근하게 되도록 오래 졸이는 음식이다. 커다란 양은솥에 재료를 안치고 묵은 간장에 까맣게 졸이면 붕어 맛이 나지 않으면서도 붕어의 깊은 맛이 밴, 너무 부드러워서 입 안에서 스르르 녹아버리는 무를 먹을 생각에 행복한 기다림으로 지키고 있었다.
　

그래서 백석의 시 '주막'을 읽으면 나도 모르게 어린 시절 아무 걱정 없던 그때로 훨훨 생각이 날아가곤 한다. 그렇지만 설마 오래된 그 맛이 못 잊어지고 때가 되면 슬금슬금 혀 끝에 되살아나는 것이 음식에 미련이 남아서그런 것은 아니리라. 그 냄새와 맛을 따라가면 이제는 멀리 떠나가버린 시간과 그 시간 속에서 함께 울고 웃던 그리운 이들이 거기 있기 때문이리라.
　

지금 떡국을 먹으며 맛있다고 고사리손의 엄지를 치켜주는 저 아기들도 훗날 설날 떡국을 앞에 두고 내 생각을 한 번쯤 해 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