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간지인 검은 호랑이의 壬(검은)은 음양오행에서 수(水)에 해당하고, 寅(호랑이)은 목(木)에 해당한다고 하니, 올해는 물을 머금은 어린 나무가 자라듯 쑥쑥 자라고 생명력이 넘칠 해가 되려니 기대해 본다.
　

예로부터 호랑이는 우리 민족과 매우 가까운 동물이었다. 비록 지금은 거의 찾기 어려워졌지만, 일제강점기 이전만 하더라도 우리 산천에서 호랑이를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한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의 설화나 민화에는 유독 호랑이가 많이 등장한다. 민화 중에서도 까치 호랑이 그림은 해학적이면서 우리와 매우 친근한 그림이다. 여러 버전으로 전해지는 까치호랑이 그림에서 공통적으로 호랑이는 선하게 입을 벌리고 웃고 있고 호랑이 머리 위 소나무 가지에 앉은 까치는 당당한 자세로 무어라고 호랑이에게 조잘대고 있다. 재미있으면서도 정겨운 그림이다.
　

이런 민화는 흔히 벽사(闢邪)와 길상(吉祥)의 의미를 담고 있다. 집에 나쁜 기운이 들지 않고 좋은 일만 생기기를 기원하던 옛사람들의 마음이 느껴진다. 또 신령님과 호랑이가 함께 한 민화도 많은데, 이런 그림에서 호랑이는 영물(靈物)로, 신성한 존재로 받들어지기도 했다.
　

그뿐인가, 우리 설화에는 또 얼마나 많은 호랑이가 등장하는가? 우리 건국설화인 단군신화에 많고 많은 동물 중에서도 호랑이와 곰이 등장하는 것은 그만큼 호랑이가 생활 속에 깊이 들어와 친숙한 동물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은혜 갚은 호랑이, 사람과 사랑하여 혼인한 호랑이 아가씨, 효자를 도와주는 호랑이, 나무꾼에게 형님 소리를 듣고는 자신이 사람의 형님인 줄 알고 나무꾼의 어머니에게 죽을 때까지 효성스럽게 봉양하는 호랑이' 등의 이야기 속에는 어리숙하지만 선하고 정겨운 호랑이의 모습이 담겨 있다.
　

그러나 '곶감과 호랑이', '토끼에게 조롱당하는 호랑이', '해와 달이 된 오누이' 같은 이야기에서는 호랑이가 약한 백성을 괴롭히다가 백성의 재치 있는 방어에 넘어가서 도로 애를 먹는 어리석은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
　

이런 이야기에서 서민들은 탐관오리들을 호랑이로 형상화하여 이야기 속에서나마 자신들이 그들의 괴롭힘을 지혜롭게 물리친 모습으로 그려낸다. 토끼와 호랑이의 여러 이야기 중 한 가지만 소개해 볼까 한다.

　

추운 겨울 배고픈 호랑이가 들판에서 토끼를 만났다. 막 토끼를 잡아먹으려고 하는데, 토끼가 우선 그 옆에 있는 연못에 잔뜩 있는 물고기부터 먼저 실컷 먹고 나서 토끼를 먹으면 더 좋지 않겠냐고 호랑이를 꾀었다.
　

토끼가 시키는 대로 호랑이가 낚싯대 대신 자기의 꼬리를 물 속에 담그고 있는 사이, 토끼는 모닥불을 피울 나무를 모아 오겠다고 달아나 버렸다. 점점 무거워 오는 꼬리는 물고기가 많이 물어서 그러려니 생각하고 호랑이는 욕심이 나서 더 많은 물고기를 잡겠다고 계속 담그고 있다가 얼어오는 못 물 속에 꼬리도 같이 얼어 버려서 골탕을 먹는다.
　

어리석고 욕심 많은 호랑이를 혼내주는 토끼에 자신을 투사한 서민들은 이야기 속에서나마 후련함을 느끼기도 했을 것이다.
　

다산 정약용도 암행어사가 되어 적성 지방을 두루 다닐 때 쓴 시 '적성촌을 지나며'에서 가난하고 힘없는 백성을 착취하는 탐관오리들을 '밤마다 울타리 밖에서 어흥거리는' 호랑이에 빗대어 탄식하고 있다.
　

호랑이가 이렇게 다양한 성격으로 다양한 이야기 속에 등장한다는 것은 그만큼 생활 속에서 호랑이를 쉽게 접할 수 있기 때문이리라.
　

어쨌든 올해의 호랑이는 밤마다 마당에다 사냥한 짐승을 던져두고 가던 은혜 갚는 호랑이가 되어 우리들의 새해 첫 날의 희망을 매일매일 채워주는 한 해가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