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홍콩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우주'라는 작품이 132억에 낙찰되면서 한국 미술 최고가를 경신했다, 그 이전까지의 최고 경매가 또한 그의 작품이었다. 이중섭의 '소'를 제외하면 낙찰가 톱텐은 모두 그의 작품들이다.
　

김환기 화백이 한국 최고의 화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부인 김향안 여사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녀의 열정적인 사랑과 작품에 대한 애정, 헌신적 내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김환기 화백에게 있어 김향안은 최고의 아내이면서 어머니와도 같은 존재, 언제나 소통이 가능한 친구, 사무적 수완을 갖춘 훌륭한 큐레이터, 통역관 등 일인 다역의 주인공이었다.
　

화가의 아내로 살기 위해 좋아하는 문학의 길을 접어두고 그림 공부부터 했다. 프랑스로 먼저 나가 그림과 불어를 먼저 배웠고 남편의 유학길의 징검다리를 놓았으며 남편의 작품세계를 이해하고 그 가치를 빛내기 위해 헌신했다.
　

놀랄만한 일은 그녀가 천재 시인 이상의 아내였다는 사실이다. 이상에게 등장하는 여인은 세 사람 정도인데 금홍, 권경옥, 변동림이 그들이다.
　

이상이 결혼까지 한 사람은 변동림이었다. 변동림은 이상의 친구이자 곱추 화가 구본웅의 배다른 이모이기도 하다. 이모이지만 나이가 여섯 살이나 적었다. 시대를 반영한 듯 어두운 이상의 초상화를 그린 화가이다.
　

소설가 표성흠은 이들을 소재로 '친구의 초상'이라는 소설을 쓰기도 했다. 변동림은 중퇴를 했지만 이화여대 영문과를 다녔고 특히 소설을 좋아해서 삼국지를 달달 외울 정도로 소설가가 꿈이었다.
　

이런 문학에 대한 공통적 관심사들이 이상과 가까워진 계기가 되지 않을까 키가 훤칠하고 백구두에 넥타이 메고 다닌 모던 보이와 모던 걸 변동림은 서로에게 빠져들며 동거에 들어갔고 결혼에 이르게 된다.
　

신혼을 즐길 만큼 이상의 몸은 말이 아니었다. 고장난 육체로 종일 누워지내는 이상을 대신해서 그녀는 일본인이 운영하는 바(bar)에 나가 일도 했다.
　

구본웅의 도움으로 요양차 그토록 바라던 일본 동경으로 가게 되지만 그곳에서 악화된 폐결핵으로 병원에 입원하고 만다.
　

일본으로 달려온 부인에게 이상은 '멜론이 먹고 싶소'라는 말에 변동림이 어렵게 구해왔지만 먹을 수 없을 지경으로 상황이 나빴다.
　

결국, 그 말은 지상에 남긴 마지막 말이 되고 말았다. 1937년 4월 17일 결혼 4개월 만의 일이었다. 이상의 유해는 서울 미아리로 돌아와 묻혔지만, 훗날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나중에 유실되고 말았다.
　

그들의 관계는 결혼식은 올렸지만,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던 관계로 변동림은 스무 살에 청상과부가 되었지만 법적으로는 미혼이었다.
　

이후 아이가 셋이나 딸린 김환기와 결혼을 하게 되는데 집안의 반대가 무척 심했지만 변동림에서 김향안으로 개명까지 해가며 1944년 김환기와 결혼을 감행했다.
　

김향안이라는 이름은 바로 김환기 화백이 지어준 이름이었고 김환기 화백의 아호였다. 이들은 성북동에 신접살림을 차린 후 수화(김환기의 호)와 향안이 사는 집이라는 뜻으로 '수향산방' 이라 이름을 지었다.
　

그녀에게는 천재를 알아보는 안목을 있었던 걸까? 천재 시인과 천재 화가의 아내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우연만은 아닌 것 같다.
　

시인 이상과는 워낙 짧은 기간이어서 그녀의 존재감이 별로 나타나 보이지는 않지만, 김환기와의 결혼은 그야말로 환상적 조합이었다.
　

파리에 가서 공부를 같이하고, 없는 돈으로 백자 항아리를 구입하는 김환기를 이해하고, 뉴욕생활 등 화가 활동을 하는데 헌신을 아끼지 않았다
　

1970년 김환기 화백이 죽자 그녀는 '한 사람이 사라졌는데 온 우주가 텅 빈 것 같다' 했다. 그리고는 1978년 환기재단 설립을 하고 작품들을 정리했으며 마침내 1999년 종로구 부암동에 환기 미술관을 개관하였다.
　

이중섭이나 박수근 천경자 등 우리나라 대표 화가들이 위작 시비에 휩싸이는 것과 달리 김환기 작품에는 그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던 것은 김향안 여사 덕분이었다.

2004년 2월 김환기 화백이 세상을 떠난 지 꼭 30년 만에 김향안 여사도 뉴욕 허드슨강이 내려다보이는 웨스트체스터 공동묘지에 남편 옆에 나란히 누웠다.
　

다음은 그녀가 남긴 에세이집 '월하의 마음' 한 구절이다. '사람의 칠십 대는 인간으로서 완성되어 가는 시간이다. 여기엔 남녀도 빈부도 없다. 하나의 인간이 존재하다 소멸되어 가는 기록이 있을 뿐이다'
　

또한 스무 살에 만난 이상에 대해서도 한마디 남겼다. '그는 가장 천재적이고 황홀한 삶을 마쳤다. 27년은 천재가 완성되어 소멸하기 충분한 시간이었다'라고 회상했다.
　

이외에도 수필집 '파리와 뉴욕에 살며'와'사람은 가고 예술은 남다' 등을 저서를 남겼다.
　

김환기 화백의 대표작인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날까' 는 김광섭 시인의 시 '저녁에' 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푸른색 점으로 연결된 우주 같은 이 작품을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한다. 별들을 그림 속으로 데려온 온 화가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외롭지 않다. 나는 별들과 함께 있기에…"
　

한 시대를 치열하게 살다간 그들은 아마도 별이 되어 만나고 있을 것 같다. 김환기와 김향안 두 예술가부부 또한 가장 다정스런 별로 빛나고 있을 것 같다.